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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Dec 27. 2023

자취할 때 아프면 꽤 많이 서럽다

23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휴의 시작을 알리던 12월 23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아파 병원에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편도가 부은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 어디에서도 내가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릴 확률은 거의 0(제로)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병원엔 평소보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없던 병도 대기하고 있다가 옮겨서 생길 것만 같을 정도로 앉을자리도 부족할 정도로 사람은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자리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슬슬 열까지 오르고 있었다.


평소 다른 사람들보다 체온이 낮아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체온이 나오면 미열이 있다고 할 정도로 저체온인 내가 아예 뜨끈뜨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눕고만 싶어 졌을 때 다행히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목이 아파요"
"아~ 해보실게요. 목이 부었네요. 약 드릴게요."
"저... 근데 열한 번만 재볼 수 있을까요?"
삑 -
"38.6도입니다."
"독감 검사 해보실래요?"
"네.. 해볼게요."


처음엔 요즘 유행하는 독감인 줄로만 알았다. 독감 검사 후 15분, '음성 나오셨어요'라는 대답을 받고 바로 "코로나 검사도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왠지 전날 직장 동료가 회사 단톡방에 '코로나 확진입니다ㅠㅠ'라고 보낸 게 괜히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행된 코로나검사, 결과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양성'이 나왔다. 


출처 : 쿠키뉴스 


저 수액도 맞고 주사도 맞을래요.


아프기 전엔 "나는 왜 안 걸리냐 깔깔~" 거리며 병을 우습게 생각했는데, 막상 걸리자마자 수액 맞고 꼬박꼬박 약을 먹어가며 증상이 호전되기만을 바라기 시작했다. 첫날은 살만했다. 수액 한 방에 열도 내리고 목도 상당히 좋아졌다. 처음 코로나에 걸린 거였지만 역시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근데 고비는 3일째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침만 삼켜도 입만 벌려도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하고 아침부터 열이 미친 듯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아픔보다 나를 더 괴롭게 한 것은 연휴 내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SNS와 상상으로 생각해 내는 것들이었다. MBTI J가 90%인 나는 연휴 계획을 알차게 세워두었고,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며 꽤 신나 있었는데,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코로나라 아무도 집에 올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도, 가족도, 친구도...

그러다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제국의 아이들 (ZE:A)의 노래 후유증의 가사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나 그냥 하염없이 서글퍼져


이 가사가 너무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랑 통화만 하면 울고, 아무 잘못도 없고 내가 아픈 건데 모든 상황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나가지 못하는 것, 아무와도 연휴를 즐기지 못하는 것, 크리스마스에 맞춰 주문제작한 케이크를 혼자 먹어야 한다는 것, 등등 집안 곳곳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 뿐이었다. 



주마등처럼 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매우 깨달았다. 



혼자 사는데 아프면 엄청 서러워
진짜 안 아픈 게 최고야. 


그렇다. 엄청 서러운 게 아니라 엄청 매우 많이 꽤 서럽다. 정말 하루에도 다섯 번은 넘게 울고 코 풀고 울고 코 풀고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줄줄 흐르고, 통화하다가 울고, 티비 보다가 울고, 멍 때리다가 울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주듯 남자친구와 가족들이 배달을 시켜줬다. 사실 배달이 아니면 움직여서 뭔가를 해 먹는다는 건 꿈도 못 꿀만큼 첫 코로나는 정말 너무나 아팠다.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제대로 듣고, 뭐 먹고 싶냐는 말에 고기라고만 외쳤다. 

그리고 고기를 정말 원 없이 먹은 거 같다. 그렇게 먹고, 약 먹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자기를 반복했더니 드디어 상태에 호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드디어 목 상태도 괜찮고, 목소리도 조금은 돌아왔다. 아직 자가키트를 검사하면 양성이 나오지만 그래도 우울함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코로나 안 걸려"라는 말은 못 하지만, 절대로 함부로 입 밖으로 이딴 말은 내뱉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코로나 안 걸릴 수 있으면 다시는 걸리지 말아야지. 절대 혼자서 자취할 때, 아프지 말아야지. 

아파도 결혼해서 아프자.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을 때, 가족들이랑 같이 있을 때 아프자.



이 세상 1인 가구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응원하게 된다. 

가장 서러운 건, 혼자일 때, 돈도 없고,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없을 때, 아프다는 걸 새삼 깨달은 23년 12월 성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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