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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Dec 27. 2022

드라이브 마이카

2022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기 좋은 영화


2022년 크리스마스에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았습니다. 전날 친구 집의 딱딱한 바닥에서 몇 시간 잠들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3시간짜리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죠. 그러나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는 일은 드물어요. 이때가 아니면 이 마음이 사그라들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신도림 롯데시네마로 향했습니다.      


세 시간 중 20분은 울고 있었어요. 중간중간 영화가 아주 조용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 타이밍과 눈물이 나오는 타이밍이 계속 겹쳐서 소리를 안 내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했죠. 그렇다고 슬픈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집에 오면서 생각한 이 영화를 표현하는 한 문장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입니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다가 마지막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건 무엇일까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일 수도 있고, 모른 척했던 감정을 마주하거나 도망치듯 떠나온 장소에 돌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통을 마주하기 싫어서 다들 도망쳤던 거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도 받기도 합니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환경이 없었다면 그들은 영영 도망치면서 살았을 거예요.      


주인공 가후쿠는 어른의 표본 같은 사람이에요. 감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요. 점잖은 태도를 보면서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언제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관조하는 것 같아요. 가후쿠의 현실은 완벽해 보입니다.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 연극을 연출하고 주연을 맡으며 일에서도 승승장구 중이죠.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를 모른척합니다. 그 선택이 그의 점잖음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 선택이 인생을 심연으로 끌어들일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나서 연기에도 몰입할 수 없게 됩니다. <바냐 아저씨>의 바냐 역할은 자신의 내면을 이끌어 내는 것 같아서 더더욱 피하게 되지요.      


이런 주인공에게 현실을 마주하게 해주는 인물은 한 명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아내와 외도한 젊은 남자 다카쓰키가 있습니다. 다카쓰키는 아직 가후쿠의 부인, 오토를 잊지 못하고 있죠. 오토가 쓴 대본으로 연기했을 때만 자신의 안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가후쿠를 찾아옵니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답게 가후쿠는 편견 없이 자신의 연극에 다카쓰키를 주연으로 발탁하고, 종종 그에게 조언도 해줍니다. 몇 번 그런 만남이 이어지다가 다카쓰키는 가후쿠가 모르던 오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모든 감정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낸 다카쓰키는 후련해 보입니다. 이후 그는 어쩌면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는 범죄사실을 아주 간단히 인정합니다.     


이 일로 가후쿠는 갑작스러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바냐를 직접 연기하느냐, 연극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드느냐. 극장 관계자는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어떻게 할 것인지 묻죠. 그때 가후쿠가 묻습니다.      


“그걸 꼭 지금 결정해야 합니까?” “네.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큰 사건이나 감정이 덮칠 때 일을 놓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죠.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있다면 미룰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마주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죠.      


가후쿠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운전수 미사키에게 그의 고향에 가도 되겠냐고 묻습니다. 미사키는 그곳에서 도망쳐서 지금 이곳 히로시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은 미사키에게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는 일과 같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받아들이고 가후쿠와 함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차와 배를 타고 고향에 도착합니다. 가는 길에 둘은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꺼내놓습니다. 각자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죽였다는 비밀이었죠. 실제로 죽였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들의 여정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가후쿠는 마침내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게 됩니다. 정말 말하고 싶으나 하지 못한 말, 오토에 대한 원망과 후회의 감정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바냐를 연기할 수 있게 됩니다.     


보너스처럼 삽입된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따뜻한 배려라고 느껴졌어요. 인물들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힌트처럼 보여줍니다. 빨간 자동차는 가후쿠를, 강아지는 한국인 부부를 의미하기에 그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대안 가족을 만들었다고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후쿠는 차를 온전히 미사키에게 맡겼죠. 이는 미사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질문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신뢰란 무엇인가. 자신을 마주한다는 건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일이란. 인생이란.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가 가기 전 그중에 하나라도 답을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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