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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강하 Sep 19. 2018

여행이 항상 계획대로 되진 않아

시작부터 삐걱거린 요론섬을 향한 여정

"바다색 좀 봐! 우리 저기 꼭 가자." 


"그래!"


아름다운 장소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으레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바다도 아름답지만 그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공들이 느긋하게 사색을 할 때, 나도 같은 공간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막연하게 지중해 어디쯤 일거라는 상상을 했다. 저런 환상적인 장소가 가까이 존재할리 없잖아?


지금이야 요론섬이 조금은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요론섬을 방문했을 때에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 봐도 섬의 위치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최후의 방법, 지식인의 도움을 받았다. 놀랍게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답변이 달렸고, 그곳의 정체는 이름조차 귀여운 요론섬! ‘우와’하는 감탄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일본이래. 이름도 요론섬이래!




영화 <메가네>의 한 장면



곧바로 친구와 여행계획을 세웠다. 나도 친구도 이제 막 직장은 관둔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넉넉하게 열흘의 여정으로 비행기를 예매하고, 요론섬 공식 홈페이지에서 관광지와 해변을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방문할 곳을 눈여겨보았다. 배 예약 또한 빼놓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 한국에서 오키나와까지 이동한 후, 오키나와에서 비행기 혹은 배를 한 번 더 타야 갈 수 있는 섬이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서 요론까지 향하는 배를 예약하고 출발날짜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들뜬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진짜 간다! 



오키나와를 가는 도중 비행기 창 밖으로 요론섬을 발견할 수 있다






오키나와 본섬에 도착해서 미리 알아본 대로 국제거리와 가까운 미에바시역 근처의 가장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말도 안 되는 가격 8천원. 예약할 때엔 친구에게 '진짜 싸지!'를 외치며 의기양양하게 가장 저렴한 숙소를 발견했다고 우쭐했다. 하지만 이유 없이 쌀리가 없었다. 이 당시 나는 여행 꼬꼬마였다. 직접 여행계획을 짜본 것도, 외국 숙소를 예약해 본 것도 처음이라 무조건 최저가를 골랐다. 물론 돈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너무 했다. 한 방에 정원이 24명인 것도 그렇지만 우리가 예약한 8천원 짜리 잠자리는 앉아도 머리가 천장에 닿는 이층침대 위에 다다미를 깔아놓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불도, 웹사이트에서는 보였던 베개마저 없었다. 잠시 잘 곳을 확인하고 내려온 우리는 말을 잃었다. 


"우리 8000원으로 잠자리 동냥한 거야? 저 자리는 공짜로 재워준다고 해도 욕먹을 걸."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하룻밤이니까! 내일 아침엔 어차피 요론섬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단순한 우리는 금세 기운을 내서 근처 국제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국제거리는 오키나와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이다.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가 몰려있고 무엇보다 오키나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다. 처음 그 길에 들어섰을 때 명동만큼 붐비고 있는 거리의 모습에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거리를 백 미터쯤 걷다보면 다 비슷비슷한 가게들의 연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마저 명동을 닮았다.


인파 사이를 걷다보니 금방 배가 고파져 ‘소바’라는 간판만 보고 식당에 들어갔다. 일본 특유의 메밀 소바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게 된 것은 하얗고 통통한 면에 맑은 국물의 모습으로 우동이 잘못 나온 줄 알았다. 당황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오키나와에 대해 공부해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여기는 오키나와 소바 가게인가보다. 오키나와 소바는 밀가루 면으로 만든대."


소바를 먹자며 친구를 끌고 온 나는 이건 오키나와에서밖에 못 먹으니까 오히려 잘됐다는 말을 하며 멋쩍게 둘러댔다. 맛은 뭐, 그냥 그냥. 대충 한 끼 때운다는 정도의 맛이었다. 다시 그 혼잡한 거리를 걷기 싫어서 근처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화점을 구경하기 전 일층의 카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유리 전시대 안에 여러 가지 푸딩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 살았던 고모가 일본의 크렘 브륄레가 그렇게 맛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맛스럽게 구워진 갈색 설탕의 겉면이 반갑기까지 해서 고민 없이 그것을 선택했다. 친구는 여기서도 한국에서의 버릇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우리는 처음 함께 떠나온 긴 여행에 들떠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이 한국과 얼마나 다른지. 내일 보게 될 바다는 얼마나 예쁠지. 그런데 한참 둘이 이야기에 빠져있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이상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박강하 고객님 되십니까?"

"네. 어디세요?"

"내일 요론으로 가는 배 예약하셨죠. 죄송하지만 태풍이 오고 있어서 내일 배는 취소되었습니다."

"네?! 그럼 언제 갈 수 있어요?"

"아직은 미정입니다. 추후 다시 홈페이지나 전화로 문의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나는 어깨가 축 쳐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친구가 고개는 빼고 물었다.


"뭔데?"

"요론가는 배 못 뜬대.. 태풍 때문에."

"뭐?"


나는 말을 잃었다. 모든 기운이 다 빠졌다. 여기를 오려고 두 달 가까이 준비를 하고, 없는 돈을 끌어 모으고, 친구와 시간도 겨우 맞췄는데, 배가 언제 뜰지 기약이 없다는 거다. 왜 하필 내가 여기에 왔을 때 태풍이 온 건지.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컸다. 이렇게 뭔가에 실망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절망감에 빠져 말도 없이 가만히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친구는 '모레는 배 뜰 거야. 너무 걱정 하지마' 하며 나를 다독였다. 친구의 근거 없는 긍정적인 마인드에 나도 ‘그래. 어쩔 수 없지. 모레는 괜찮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윤만세 그림 insta @yoon10003






밤이 되었다. 이층 침대 위 다다미 바닥에 이불도 베개도 없이 누워있으려니 불편하기도 불편한 거지만 그것보다 너무 추웠다. 에어컨의 방향이 위로 되어있어서 찬바람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에어컨 좀 줄여달라고 할까?"

"근데.. 밖에 다 불 꺼져있고 다른 사람들은 안 추운 거 같애.."


소심한 우리들은 잠시 그대로 누워 있다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바라본 잠자리를 가린 커튼 사이사이로 보이는 이불을 덮은 안락한 모습들. 아아, 이불이란 정말 좋은 거야! 모르는 사람 옆에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다. 구석에 둔 여행 가방에서 여분의 옷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반팔 티셔츠 몇 개로 온몸을 다 덮기는 어려웠다. 결국 뭐라도 하나 덮어쓰면 덜 추울까 싶어 시원하려고 가져온 쿨토시까지 팔에 찼다. 베개가 없어 불편해 죽겠는데, 몸에 덮은 옷을 베면 덮을 게 없어서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울 수 밖에 없었다. 친구가 다시 사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와서는 노란 오리발 한쪽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라도 베자."


어이가 없어서 잠깐 황당한 표정을 하며 받아들었지만 어쩌겠나. 베야지. 오리발을 옆으로 길게 뉘어놓고 어떻게든 편한 쪽을 찾아 머리를 갖다 댔다. 한쪽으로 경사진 오리발을 따라 머리가 자꾸만 옆으로 고꾸라졌다. '푸후훗. 이게 뭐야. 푸핫'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졌다. 친구도 따라 웃었다. 


"이것도 추억이지 뭐."

"그래. 진짜 이런 추억은 또 없겠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내뱉는 ‘이것도 추억이지!’ 는 이때도 잘 써먹었다.




-




요론섬 여행tip


성수기가 아니라면 요론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예약하지 않아도 여유가 있다.

다만 성수기는 예약하는 것도 좋고, 취소가 되었을 경우 연락을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배예약 사이트

http://www.aline-ferry.com/index.html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면 비행기를 이용하자.


비행기 예약사이트

http://www.jal.co.j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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