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에서 복귀를 결정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첫째가 유치원에서 하원한 후 스케줄을 짜는 일이었다. 지난 1년간 집에 있던 엄마의 부재가 느껴질 것은 당연하거니와 이모님은 이제 갓 기기 시작한 둘째에게서 눈을 뗄 수 없기에, 첫째는 하원 후에 거의 혼자 시간을 보낼 것이 뻔했다.
해서 하원 후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기 전까지의 스케줄을 짜기 시작했다.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유치원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오니 집에 와서 간식을 먹고 하면 금방 시간이 갈 테고. 월요일에는 외할머니와 만들기 놀이도 하고 필드트립도 가기로 했다.
문제는 수요일이었다. 인지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유명한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지라 놀이 중심의 방과 후 수업들은 대부분 아이의 마음에 들었지만, 수요일에는 아이가 원하지 않는 수업만 있었다. 사업을 하시는 외할머니에게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아이를 부탁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처음 생각했던 건 대학생 놀이선생님이었다. 나도 어릴 때 옆집에 사는 언니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었기에, 아이에게도 '동네 언니'같은 존재를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알아보다 곧장 든 감정은 '걱정'이었다. 뭐든지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이 시기의 아이에게 1대 1 튜터의 가치관, 인격, 언행 그 어느 것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했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대학생들에게 몇 번 과외를 받았는데, 공부를 주목적으로 한 만남이었음에도 중간중간 스몰토크를 통해서 듣는 선생님의 가치관, 생각 등을 공감하고 동경했던 기억이 있다. 하물며 아직 비판적인 흡수가 가능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선생님의 영향은 얼마나 강할까. 하지만 사전에 그런 부분들을 검증할 방법은 없을 터였다. 해서 대학생 튜터는 패스. 방학도 있고 취업 준비 등 본인 스케줄이 많아서 스케줄이 매우 유동적인 편이라는 조언도 한몫했다.
그다음으로 생각했던 건 보육교사 출신의 엄마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아무래도 전업인 경우가 많아 시간 약속도 잘 지켜질 것이고, 보육교사 출신이니 아무래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발달단계에 대해 좀 더 잘 아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신 상황에서 거의 유사한 형태의 돌봄을 해주실 분을 추가로 모셔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 생각이 닿은 곳은 아동심리학을 전공하신 분들이었다. 시기별 발달 단계를 잘 알고 아이에게 단계에 맞게 필요한 인풋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에서였다. 한데 아동심리학을 전공한 분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지? 한참 알아보다 '놀이치료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놀이치료사는 심리학, 아동학 기반으로 석사까지 마친 전문가로 놀이를 통해 아이의 어려움을 읽고 치료까지 진행하는 분들이었다. 아이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놀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시는 분들이기에 아이가 퀄리티 타임을 보내기엔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이 넘게 수요일을 맡겨온 지금, 아이는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새 기관에 가고 갓 태어난 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또 엄마가 복직하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새로운 사건들을 받아들였다. 올해 초와는 달리 낯선 상황에서도 미리 얘기만 해주면 크게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라포(신뢰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서, 선생님이 놀이 상황에서 적절히 개입하면서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나 관계 맺는 방법 등을 익힐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나도 매일 아이를 대하며 궁금한 부분들이 생길 때마다 메모해두었다가 전화 상담을 할 때 묻고, 선생님이 제시해주는 방식을 실생활에 적용해본다. 그간 아이뿐 아니라 나 또한 엄마로서 한 단계 자란 느낌이 든다.
아직까지 놀이치료를 받는 아이들 중 대다수는 어린이집에서 제안을 받거나 소아정신과에서 인계한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고, 도움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주저 없이 놀이치료를 추천하고 싶다. 전문가를 통해 나도 아이도 자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