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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구 YANGGU May 19. 2020

나는 조종사의 아내다 - 가방의 반은 비비고

외국에서 한식 먹기

비행을 가면 짧으면 2박 3일, 길면 4박 5일 스케줄이 보통 대부분이다. 나 같은 경우엔 사실 양식파인지라 해외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는 편이다. 조식은 호텔에서 먹고, 점심이나 저녁은 레스토랑에 가서 먹거나 테이크아웃을 해온다. 그것마저 귀찮을 때는 룸서비스를 시켜먹는다. 


한식파인 남편은 한 끼 정도 먹을 한식을 챙겨가는 편이다. 한식이라고 해봤자 인스턴트나 레트로트 음식이지만 스테이가 길 수록 꼭 챙겨가는 편이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 중 한식을 워낙 좋아했던 선배는 직접 집에서 반찬을 담아 밀봉해서 가져오곤 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밥통도 가지고 다니는 승무원들도 있었다고 하던데 한식파들에게는 한 달의 반 이상을 외국 음식을 먹는 것이 곤욕이겠다 싶다.


특히나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해외에 가서도 호텔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은 쿠커까지 가지고 다닌다. 불이 필요 없는 조그마한 캠핑용 코펠 같은 냄비인데, 거기에 레트로트 국이나 라면을 끓여먹을 수가 있다. 

요즘에는 컵밥, 국, 반찬 등 레트로트 음식이 정말 잘 나와서 가방에 가지고 다니기도 편한 것 같다. 


예전에는 고작 며칠인데 가방에 비비고를 한가득 가지고 다니는 선배들을 보면 뭣하러 해외까지 가서 한식을 먹을까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10년 넘게 비행하면서 나름 본인들만의 적응 방법이었던 것 같다. 5살 아기가 있던 선배는 해외에서도 아예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었는데, 호텔에 있는 시간이 온전한 본인의 자유시간이라고 했다. 룸서비스도 시켜먹고 가져온 음식도 먹으면서 자고 싶을 때 자고, 다운 받아 놓은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었는데 그 당시 해외에만 나가면 투어하고 돌아다녔던 나로서는 이제야 그 말이 이해가 간다.


해외에 나가서 호텔에만 있어야 하고, 한국에 와서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남편이 너무나 안쓰러운 요즘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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