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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Sep 22. 2023

그 녀석과 한 시간

아르코 창작 지원 발표 지원 동화 작품 1


띵.

엘리베이터 7층 문이 열렸다. 허걱! 그녀석이 타고 있었다. 이병준, 아니 녀석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곤 동시에 외면했다. 나는 엘리베이터 귀퉁이로 가서 녀석과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10층 수학학원에서 타고 내려오는 녀석과 이렇게 절묘하게 마주치다니. 나는 고개를 숙여  운동화만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는 문이 열린 채로 한참 있었다. 영어 시험을 마치고 오는 터라 너무 피곤했다.  

‘뭐야.’

나는 닫힘 단추를 신경질적으로 탁탁 눌렀다. 천천히 문이 닫혔다.

‘어서 내려가자. 어서.’ 

마음이 먼저 내달렸다. 그런데 닫힌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녀석이 짜증스럽게 닫힘 버튼을 연속으로 눌렀다. 아래층으로 가는 화살표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다.

나와 대각선으로 서 있는 녀석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휴. 몇 초만 참으면 이 숨 막히는 상황도 끝날 것이다. 나는 무심코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올려다봤다. 

‘허걱!’

놀랍게도 1층이 아닌 4층에 멈춰있었다. 나는 1층부터 2,3 층까지 숫자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래도 숫자는 4에서 바뀌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말로만 듣던 엘리베이터 갇힘 사고가 난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큰일인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어.”

나는 혼잣말을 했다. 녀석이 놀란 토끼 눈으로 나와 엘리베이터 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 여기요.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 

밖을 향해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숫자 4 옆에 붙은 안내 스티커에는 <사무실>이라고 무뚝뚝하게 적혀 있었다. 지금은 밤 9시.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 퇴근했을 시간이다. 녀석도 엘리베이터 앞으로 오더니 문 틈새에 바짝 붙어 소리쳤다. 내가 한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5학년이나 된 게. 찐따 새끼.’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것도 잠시. 고요한 느낌이 무서워졌다. 최대한 떨어져 있던 녀석과 나는 어느새 엘리베이터 문 앞에 나란히 섰다. 녀석이 문 옆의 빨간색 비상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녀석은 스피커폰에 바짝 다가가 외쳤다. ‘뚜~ 뚜뚜~’ 소리만 날 뿐 저편에서는 답이 없었다. 나는 성급한 마음에 문을 세게 찼다.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말렸다.

“이거 추락하면 우일이 너랑 나랑, 아니 우린 끝장이야.”

우리라고? 내가 어째서 너와 우리가 되는 거냐. 난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꼼짝 않던 엘리베이터에 갑자기 불이 파박 나갔다. 이번엔 정전까지 추가됐다. 어둠이 껌딱지 마냥 와락 들러붙었다. 동시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나는 정신없이 가방을 뒤져 핸드폰의 플래시앱을 켰다. 땀범벅인 녀석 얼굴이 희끗 보였다. 밤 9시 5분.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했다.

“저기, 에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 

“네 침착하시구요. 위치가 어딘가요?”

“동방 오거리에 있는 일등학원이요.”

“아, 하얀 빌딩 말이죠? 접수했습니다. 곧 출동합니다.”

나는 흐엉 울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엘리베이터에 갇혔어.”

나보다 더 놀란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10월인데도 너무 덥고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으.”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왔다. 나는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너 혹시…… 물 있어?”

“내가 좀 마신 건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낚아채듯 물병을 받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휴우. 좀 살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핸드폰 좀. 내 것은 베터리가 나갔어.”

녀석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나는 말 없이 건네주었다. 자기 엄마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걱정 마. 119에 신고했으니까 곧 구조될 거에요. 여기 우일이랑 같이 있어.”

녀석은 통화를 끝내더니 어물쩍 말을 건넸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나는 연어처럼 생각을 거슬러 올라갔다. 올해 3월 초, 우리 반 단톡방이 스크린처럼 떠올랐다.

솜이-김 우일을 우리 반 반장으로 추천해

지은-나도 동감

우철-동감 2

병준-헐퀴! 쿄쿄쿄 

“반장 추천하는 단톡에서 네가 초를 치는 바람에 내가 후보도 못됐잖아.”

나는 골이 잔뜩 난 목소리로 녀석에게 쏘아붙였다.

“너 바보야? 장난기 조금 섞어서 너를 지지한다는 표시를 한 거잖아.”

“헐퀴, 그게 비웃는 소리지 지지하는 거냐?”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불퉁거렸다.

“네가 반장 추천 거부한다고 쌩하고 나간 건 잘못 아니고?”

병준이가 비아냥거린 것만 생각했지 내가 단톡방을 나간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다시 초대했는데도 넌 계속 빠져나갔잖아.”

그랬다. 난 속이 뒤집어져서 한 달간 우리 반 단톡방에서 나와 있었다. 2년 가까운 절친의 우정은 그렇게 빠지직 금이 가고 말았다. 

구조 요청을 한 지 족히 5분은 지난 것 같다. 밖에선 아직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더운 공기 때문인지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너 아직도 지은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하냐?”

녀석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주제에 그딴 말을 해.”

나는 면상을 갈기듯 플레시앱 불빛을 녀석에게 비췄다. 녀석의 입이 비웃듯 올라가 있었다.

지은이와 나는 올해 초 커플이 되었다. 4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공을 들인 덕이었다. 당당하고 씩씩한 지은이가 나는 너무 좋았다. 우리는 틈만 나면 함께 게임을 하고 맛있는 분식집에도 자주 갔다. 우리가 커플이라는 소문이 우리 반 전체에 쫙 퍼졌다. 단톡방에서 나와 기분이 별로였던 다음날, 병준이가 지은이 급식 판을 들어주는 게 보였다.

“내놔. 내가 들어 줄 거야.”

나는 후다닥 달려가 지은이 급식 판을 붙들었다. 병준이한테 이런 일을 뺏길 수 없었다.

“어어! 국 쏟아지겠다.”

병준이가 괜히 급식 판을 기울이며 소리쳤다. 육개장이 식판 귀퉁이로 흘러넘쳤다. 옆에 있던 지은이 흰 티셔츠에 벌건 국물이 튀었다.

“앗 뜨거!”

지은이가 옷을 잡아당겨 국물을 털었다.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우쒸. 너 때문에.”

병준이는 내게 덤터기를 쒸우고 휴지를 가지러 달려갔다. 지은이는 황당한 얼굴로 나와 병준이를 번갈아보았다.

“지, 지은아 괜찮아?”

나는 뻘쭘하게 지은이를 챙겼다.

“응. 별거 아닌데 뭘.”

지은이는 쿨하게 얼룩을 닦았다. 병준이는 지은이 옆에서 계속 알랑방귀를 뀌었다. 내 속은 베이킹소다 한 봉지를 들이부은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수업을 마치고 지은이와 병준이가 나란히 교문을 나서는 게 보였다.



이후 나는 병준이와는 아는 척도 안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공간에 둘이 갇히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구조는 느려터진 거지? 20분도 훨씬 지난 것 같아 시계를 봤다. 아직 9시 15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네 엄마야.”

나는 핸드폰을 건넸다. 녀석은 엄마를 안심시키고는 얼른 끊었다.

“병준이 너, 경고하는데 재수 없이 내 말 하고 다니면 죽어.”

훅 날아간 말에 녀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니가 우리 집 쫄딱 망해서 다른 데로 이사 간다고 떠벌리고 다녔잖아.”

“떠벌리다니. 사실이잖아 새끼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으윽 컥.”

가슴께를 맞았는지 녀석이 컥컥거렸다. 바로 반격이 왔다. 녀석이 발로 내 배를 세게 찼다. 숨이 턱 멎는 것 같았다. 우린 어둠 속에서 주먹과 발길질을 마구 날렸다. 치고받던 우리는 엘리베이터 한가운데 얼기설기 뻗었다. 

“우리 집 안 망했어.”

나는 울음인지 절규인지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입안에서 피 냄새가 났다.

“우씨. 걱정돼서 한 말인데.”

녀석이 말꼬리를 흐렸다. 씩씩거리던 말싸움도 잦아들었다. 고요한 어둠이 우리를 삼켰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불이 나간 지 얼마나 됐을까. 핸드폰을 봤다. 9시 50분. 갇힌 지 한 시간이 다 돼 간다.

“에이 씨. 도대체 119는 언제 오는 거야.”

나는 애먼 데 분풀이를 해댔다. 녀석도 걱정이 되는지 문틈으로 밖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안테나처럼 세웠다.

“거기 누구 있어요? 들리면 대답해요.”

119대원이 온 것 같았다. 난 살았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힘껏 소리쳤다.

“여기, 두 사람 있어요.”

“침착하게 조금만 기다려요.”

119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점점 기운이 빠졌다. 정전이 된 엘리베이터 안은 온통 후텁지근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시원한 공기가 간절했다.

철렁

무언가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쇠를 두드리는 연장 소리도 울렸다. 문틈으로 간간이 불빛이 새어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으악!”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껴안고 넘어졌다. 이대로 추락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쭈뼛 섰다. 엘리베이터는 곧 추락을 멈추고 크게 휘청거렸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녀석의 얼굴이 내 얼굴에 우지끈 닿았다. 미끈거리고 화끈했다.

‘죽는 거 아냐?’

다시 불안이 달려들었다. 우리는 껴안은 채로 벌벌 떨었다. 엘리베이터의 휘청거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도 메스꺼웠다.

“둘이 떨어져요. 한데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한쪽으로 기울어서 더 위험해요.”

119대원의 소리가 들렸다.

“우일아 엄마야. 어서 떨어져.”

숨이 넘어갈 듯한 엄마 목소리였다. 무뚝뚝한 엄마가 저렇게 간절한 소리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린 양쪽으로 엉금엉금 갈라섰다.

“조심해.” 

나도 모르게 병준이를 걱정했다. 

“난 괜찮아. 네가 조심해.”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갇혀있는 동안 잠시도 떨어지기 싫어했던 절친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리고 이 순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다.



“문에서 뒤로 물러나요.”

와드득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누가 먼저 나올래요?”

병준이와 나는 동시에 쳐다보았다. 땀범벅이 된 벌건 얼굴이 보였다. 둘 다 먼저 나서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나는 병준이 등을 밀었다.

“너 먼저 가.”

병준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내려온 밧줄을 잡고 올라갔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구조되었다. 바로 그때 중심을 잃은 엘리베이터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난 바닥에 넘어졌다. 

“우일아. 밧줄 꼭 잡아.”

병준이가 위에서 나를 보고 외쳤다. 나는 흔들거리는 밧줄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곤 대롱대롱 매달려 간신히 1층으로 올라왔다. 엄마가 달려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우일아 괜찮아?”

 나는 엄마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길게 나왔다.

“병준이, 병준이는요”

나는 엄마 팔을 살짝 내리고 돌아봤다. 땀으로 목욕을 한 병준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119 대원이 우리를 번갈아 보며 칭찬했다.

“학생들이 침착해서 잘 구조했어요.”

어느새 밤 10시였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한 시간. 처음엔 느리게만 흐르던 시간이 나중엔 폭포처럼 내달렸다. 그동안 그 녀석은 내 친구 병준이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빠르게 달리는 시간을 좀 더 붙잡고 싶어졌다.

 “컵라면 먹고 갈래?”

나는 파란 간판이 빛나는 편의점을 가리켰다. 병준이가 좋아하는 매운 라면을 같이 먹고 싶었다.

“자신 있어?”

병준이가 씩 웃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너무 짧은 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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