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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Oct 04. 2023

펭대장이 왔다

아르코문학 창작지원 발표 지원 선정작


“승우, 은빈이, 민준이, 피씨방 베틀 가자.”

찬이가 나만 쏙 빼놓고 불렀다. 정현이도 가자는 말을 기다렸지만 꽝이었다.

“나도 같이 가자.”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찬이가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아 지레 눈을 깔았다. 나는 별로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질질 끌며 집에 왔다. 오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고 쑤셨다.

“감기인가 보네. 약 먹고 한숨 푹 자. 마트 마치면 바로 갈게”

엄마가 전화 너머로 걱정했다. 나는 감기약을 먹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약에 취해서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끼리릭 끽 끼리릭 끽끽”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났다. 방안을 둘러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끼릭. 잠시 후 또 소리가 났다. 귀를 기울여 보니 내 이불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여름 이불엔 시원한 남극 얼음과 펭귄무리가 그려져 있다. 이불 속 그림에서 펭귄 한 마리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나는 펭귄에 손을 대었다. 순간, 펭귄 주둥이가 내 손을 콕 물었다.

“아얏!”

온몸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이불이 또르르 말리면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으아아악. 엄마아아앙앙”

내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냉동실 같은 한기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이불은 잠시 후 멈추더니 좌르륵 펼쳐졌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희고 반짝이는 얼음과 시퍼런 바닷물,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까만 펭귄무리까지. 처음 보지만 왠지 낯이 익었다. 바로 내 이불에 그려진 남극이었다.

‘내가 이불 속 남극에 오다니!’

신기하고 믿기지 않아 두리번거렸다. 거기에 느낌까지 이상했다. 몸을 내려다보니 팔이 아니라 날개가 달려 있었다.

“흐억! 내가 펭귄으로?”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와락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4학년이면 혼자서도 의젓해야 한다고 엄마가 말했지만, 몸이 오소소 떨렸다. 얼음 위에서 발을 동동거리는데 펭귄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넌 누구야?”

“나, 난 사람이야.”

“사람? 네 몸이 펭귄인데?”

아차! 깜빡했다. 내가 펭귄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내가 이 구역 왕따, 아 아니, 대장이야.”

녀석은 작고 마른 몸에 털까지 꺼칠해서 대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우와! 반기며 두 날개를 퍼덕였다. 그러고는 대장을 놓칠까 허둥거리며 따라갔다. 멀리서 펭귄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모두 어디 가는 거야?”

“사냥하러.”

“대장은 사냥에 안 가?”

“나? 나는 사냥해 온 거 먹으면 돼.”

대장은 펭귄 떼를 바라보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이번 사냥에도 못 끼었구만.”

맞은편에서 나타난 펭귄들이 대장을 보고 빈정거렸다. 대장은 눈길을 피하더니 뒤뚱거리며 사라졌다.

“근데 넌 누구야. 첨 보는 앤데?”

덩치 큰 펭귄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는 우물쭈물 주저했다. 다행히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저 녀석과 같이 다니지 마”

작고 귀여운 펭귄이 내 날개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사라졌던 대장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팽귄들이 가져온 먹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다에도 뛰어들지 못하는 겁쟁이”

덩치가 나서서 이죽거렸다. 대장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딴 데만 쳐다봤다.

“그날만 생각하면. 어우! 우리 아빠가 쟤는 절대 끼워주지 말래.”

귀요미가 부리를 삐죽이며 대장을 쏘아봤다.

“겁쟁이는 굶어도 싸.”

알고 보니 대장은 대장이 아니라 왕따였다. 펭귄들은 자기들끼리만 나눠 먹고 자리를떴다.

남극의 여름 해는 길었다. 사냥 갔던 한 무리의 펭귄들이 돌아왔다. 펭귄들은 얼음 위에 사냥한 먹이를 토해냈다. 오징어와 분홍 크릴새우, 자잘한 물고기가 쏟아졌다. 새끼들이 어미 곁에서 맛나게 받아먹었다.

꼬르륵

대장한테서 연거푸 배고픈 소리가 났다. 대장은 먹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냄새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누군가 보면 그 자리에 뚝 멈춰 시치미를 뗐다.

“저리 가지 못해”

덩치가 용케 알아보고 배고픈 대장을 쫓아버렸다.

크르릉

갑자기 큰 빙하가 떨어져 나갔다. 그 위에 있던 펭귄들도 바다 한가운데로 떠내려갔다.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곧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무리가 있는 곳으로 기어이 헤엄쳐 나왔다.

“펭귄은 왜 무리를 지어 사는데?”

나는 신기해서 대장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모든 걸 함께 해야 살아남아.”

대장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음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뒤뚱거리며 따라갔다.

“여기였어. 내가 무리에서 쫓겨난 게.”

대장이 얼음언덕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지난겨울에 우린 어깨를 맞대고 눈보라를 견뎠어. 나는 우리 구역의 대장이었지. 무리를 잘 지켜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게 보였어. 눈 폭풍 속에 희미한 무언가가 나풀거리는 거야. 너무 궁금해 그쪽으로 걸어갔지. 내 어깨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야.”

대장은 부리로 얼음을 콕 쪼더니 말을 이었다.

“나중에 돌아와 보니 내 자리가 없었어. 모두 화난 눈으로 나를 밀어냈지.”

“궁금해서 그랬다고 말했어야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끼리릭 끽 끼리릭 끽끽, 대장은 말끝에 서럽게 울었다. 내방 이불에서 나던 바로 그 소리였다.  

“울지마. 내가 도와줄게.”

나는 대장을 다독였다. 멀리서 또 펭귄무리가 움직였다.

“배고프잖아. 너도 가야지?”

하지만 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음언덕을 내려갔다. 난 악을 쓰듯 말했다.

“피하지만 말고 부딪혀 봐.”

나한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내게 하는 건지 대장에게 하는 건지 모를 말이었다.

“엄마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후로 바다가 너무 무서웠어. 게다가 눈 폭풍 사건 이후로 사냥에 끼지도 못하고. 사냥에 못 끼니까 점점 더 바다가 두렵고. 그래서 이젠 사냥도 엄두가 나지 않아”

대장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친구들이 따돌려서 풀이 죽은 내 모습과 비슷했다.

“저게 뭐지?”

갈매기들이 바닷가 모래밭을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도둑 갈매기들이 우리 알을 노리고 있어.”

대장은 뒤뚱거리며 갈매기 떼를 쫓아냈다.

“눈보라 속에서 나풀거리던 게 바로 저 갈매기들이었어. 알을 훔치려고 눈보라 속에서 무리로 날고 있었지. 난 갈매기를 쫓다 그만 너무 멀리 가버린 거야.”

대장은 갈매기 떼가 흩어지자 털썩 주저앉았다.

“도둑 갈매기한테서 알을 지키려 했는데, 친구들이 혼자 자리를 피한 걸로 오해한 거야.”

“그랬구나, 방법이 없을까?”

대장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냥을 마친 펭귄들이 돌아왔다. 알을 품은 펭귄들이 먹이를 찾으러 가고 돌아온 펭귄들이 알을 품었다. 그런데 모래밭 여기저기 알들이 뒹굴었다. 알이 저 혼자 벌벌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알들은 뭐야?”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못한 알들이야.”

“왜 못 돌아와?”

“바다는 위험해. 물범한테 잡아먹히거나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거든.”

대장은 엄마가 떠오르는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냥… 저러다가 얼어 죽는 거지.”

 몇몇 펭귄들은 고아가 된 알들을 멀리 굴려 보냈다. 어떤 펭귄은 심지어 부리로 쿡쿡 찍어댔다. 이대로 놔두면 갈매기 먹이가 되거나 죽을 것이 뻔했다. 너무 불쌍해 보였다. 나는 혼자 있는 알을 다리 사이에 품었다. 뭔가 이상하고 어색했다.

“너 뭐해?”

귀요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알이 불쌍해서”

“그럼 네가 품고 키울 거야?”

하긴, 생각해보니 나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알이 죽잖아.”

“오호! 잘해봐.”

귀요미가 비아냥거렸다.

“이리 와서 저 알 품어봐.”

나는 멀뚱하게 서 있는 대장을 불렀다. 대장은 잠깐 쭈뼛거리다가 알을 다리 사이에 품었다. 엉거주춤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쓸데없는 짓이야. 이런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든.”

귀요미와 덩치가 우리를 비꼬았다.

“사냥도 못하고 쓸데없는 녀석이 이젠 알을 품는다고? 흥!”

덩치가 대장 어깨를 거칠게 치고 갔다. 기우뚱거리던 대장은 오뚜기처럼 다시 섰다.

한참 뒤 사냥을 마친 펭귄들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어, 어쩌면 좋아.”

펭귄 한 마리가 안절부절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펭귄들이 몰려왔다.

“나랑 같이 나갔던 엄마들이 보이질 않아. 분명 함께 사냥했는데.”

펭귄들은 고개를 꼬며 꺽꺽거렸다. 그러고는 자기 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대장은 홀쭉한 배로 여전히 알을 품고 있었다. 부스스한 털이 찬바람에 떨었다.

“이 녀석 믿어도 될까?”

물에서 나온 펭귄이 중얼거렸다. 대장을 지켜보던 어미 펭귄이었다.

“혼자서 도둑갈매기도 쫓았다는데.”

“설마 저 겁쟁이가?”

펭귄들은 대장을 믿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사실이에요. 대장은 거짓말 안 해요.”

“흥!”

어미 펭귄들은 콧방귀를 뀌며 돌아갔다.

힘든 하루하루가 천천히 갔다. 대장과 나는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펭귄 하나가 걸어와 대장 앞에 멈추었다. 입에 먹이를 물고 있었다. 약을 올리려는 게 분명했다.

툭!

펭귄은 싱싱한 오징어를 대장 발치에 떨어트렸다. 대장을 못 믿는 어미 펭귄이었다. 이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다른 펭귄도 슬금슬금 와서는 먹이를 내려놓고 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대장이 물었다.

“왜 자꾸 먹이를 주는 거야?”

“혹시 내가 못 돌아오더라도 내 알을 지켜줘.”

“빙하가 자꾸 사라져서 너무 살기 힘들어. 새끼 하나라도 더 지켜야 하니까.”

어미 펭귄들이 입을 모아 대장에게 부탁했다.

“걱정 마.”

대장은 자신 있게 두 날개를 올렸다 내렸다. 다들 돌아가자 대장이 가슴을 활짝 폈다.

“봤지? 먹이 갖다 주는 거. 대장은 이런 거야.”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맞장구쳤다.

“야호. 이제 너는 왕따가 아니라 진짜 대장이야.”

대장은 알을 품은 채 허겁지겁 물고기를 먹었다. 내게도 내밀었지만 생선을 날로 먹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눈 딱 감고 한입 먹었다.

“우왕 맛있어.”

앗차! 내 입맛도 펭귄으로 변한 걸 깜박했다. 우린 배가 빵빵하도록 먹었다. 대장의 등에 검은 윤기가 돌았다. 배가 부르자 차가운 칼바람도 거뜬히 이겨 낼 것 같았다.

“다시 대장이 된 거 축하해.”

“고마워, 네 덕분이야.”

나는 남극의 풍경을 한눈에 보고 싶어 얼음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언덕 한 편에 흰 눈이 부드럽게 펼쳐졌다.

“야호!”

나도 모르게 눈 위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고는 날개와 다리를 위아래로 나비처럼 펄럭였다. 눈이 솜이불처럼 포근했다. 차갑던 몸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느낌이 이상해서 가만히 눈을 떴다.

앗!

내 침대였다. 날개 대신 두 팔이 만져졌다. 펭귄이 아닌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이불을 살펴보았다. 남극 그림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귀퉁이에서 울던 펭귄은 이제 알을 품고 있었다. 딱 봐도 대장이었다.

 ‘대장. 나도 부딪혀 볼게.’

나는 펭귄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이불을 꼭 끌어안았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스르르 풀렸다. 잔잔한 파도처럼 잠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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