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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Nov 02. 2023

11월  잔치는  끝났다

은목서  전별기

요즘  일과의  시작은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은목서 향기가  가득한  화단을  중심으로  진자운동하듯 왔다갔다 한다.


바닥에  깔린 향기는 걸을 때마다 퐁퐁  일어선다

언젠가  만개한 자란 향을 사뿐사뿐  일으키며

거실을  소요했던  때가  생각난다


향기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은 일상의  큰 기쁨이다.

얼마간   쓸쓸한  영혼과  상처 입은  심사를 향기로 어루만지고나면

세상이 내게  조건없는  호의를  베푸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진다.



그러나

11월로 접어들면서   잔치는  끝났다.

작고  청량한  느낌의 흰꽃잎이 누렇게  말라

쇠락한다.


분분한 낙화도 없이 가지에 오종종 붙어

소슬 바람  풍장에  몸을  맡긴다.

가야할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병기 시인의 낙화를  떠올린다


지금은 우리가  이별해야 할  때

내게 침투해 오던  향긋한 집요가

느낌의 공동체로  온 동네를  휘감았던  가을날을.

나는  잊지 못할것이다.

가을비가  내린다면

나는 간신히  단순해질 것 같다.


잠깐 울다  전진하는

슬픔의 유통기한을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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