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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Feb 16. 2024

대설주의보

기꺼이 고립을 꿈꾸며


펼쳐 읽을 것처럼 눈이 내린다.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던 시인은 눈 속에서 행복한지 궁금하다. 큰 눈이 내리니 주의하라는 예보는 눈과는 먼 세상에 살고 있는 내게 일종의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는 눈이 내리지 않기로 유명한 남쪽 항구도시다.


하얀 아침에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전나무 숲 사이로 슬핏 보이는 흰 산봉우리, 게다가 눈 위에 파란 꿩 발자국이 오종종 찍혀있는 풍경이란.

생각만 해도 겨울의 종합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눈이 있어 겨울은 비로소 겨울이 된다.


하지만 도심에 내리는 눈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자동차 사고와 염화칼슘을 다량 살포해 도로와 차량이 부식된다는 뉴스는 현실 자각을 불러온다. 꽁꽁 싸맨 채 종종걸음치는 행인들과 도심 뒷골목 사람들의 냉기 가득한 하루는 눈 내리는 서정을 쩍쩍 금 가게 한다. 


현실은 낭만을 한입에 집어삼킬 만큼 어두운 블랙홀이다. 


그럴 때는 홀로 걷는다. 숲 바닥에 떨어졌다면 산짐승의 소중한 먹이가 될 먼나무 열매들이 보도블럭에 뒹군다. 싹 틔울 가능성 제로의 열매들은 허무하게 짓밟히다 쓰레기차에 폐기된다. 도심의 가로수를 볼 때마다 느끼던 안타까움이 도시에 쏟아지는 큰 눈을 보면 오버랩된다. 


세상의 색을 다 지운 채 산과 나무와 들판을 덮고 있는 하얀 풍경은 그래서 환상의 원형질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끝내 환상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에 나오는 주인공 콜필드처럼 아이들의 순수함과 치환될 수 있는 대설의 환상을 간직하고 싶다.


하여 나는 세상의 소음이 소거된 눈 오는 풍경을 거닐 것이다. 지구의 숨소리와 사각거리는 눈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 기꺼이 고립될지도 모른다. 거기서 한 열흘,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식물성 바람과 나부낄 것이다. 기능주의적 근거로 자신을 증명 해야할 필요가 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것이다.


팝콘처럼 쏟아지는 눈과 강아지같이 즐거운 나와, 커피 포장지에서 날아온 앵무새가 한데 어울려 세상의 모든 빛을 합한 화이트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환상은 그 자체로 우리 삶을 지켜주는 요람이다. 요람에 내리는 희고 큰 눈발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다. 그것도 몬순과 열대를 벗어난 지역에만 국한되니 이쯤 되면 대설주의보는 행복예보가 아닐까.



24시간 동안 내려 쌓인 눈의 양이 5cm 이상 예상될 때 발령하는 대설주의보. 눈이 많은 올 겨울엔 대설이 서설이 되길 바라본다. 환상과 낭만도 깃들 여지가 있어야 굴뚝새처럼 날아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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