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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실 Aug 21. 2023

미친 사과가 있는 풍경

액상프로방스  세잔의 아뜰리에

   

멀리 생트 빅트와르산이 보일 것도 같다. 화가의 이젤이 놓였던 액상프로방스의 언덕. 그 아래 북창이 넓고 긴 아뜰리에가 있다. 북창 옆에는 정물의 소재들이 주르르 놓였다. 사과, 그릇, 초록 올리브 병, 의자, 협탁, 세 개의 해골과 자잘한 소품들. 이곳은 근대회화의 선구자 폴 세잔의 화실이다. 역사적 그림이 탄생한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압도됐다. 



흔히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가 있다고 한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가 그것이다. 세잔의 사과는 근대회화의 문을 열어젖힌 미친(美親), 곧 아름답고 사랑스런 사과다. 세잔의 정물화로 인해 원근법과 명암법이 파괴되고 사진 찍듯 대상을 재현하는 화법은 더이상 주목 받지 못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탄생한 원근법을 통째로 갈아엎은 혁명가 세잔. 그러나 당시 화단에서는 외면과 조롱을 뒤집어쓴 고독한 루저일 뿐이었다. 예술가의 운명인지 비애인지 마음 한켠이 아린다. 



모네를 주축으로 당시 거세게 일던 인상파에게서 세잔은 미완의 느낌을 받는다. 결국 ‘색채는 해방됐는데 형태는 아직이다.’며 파리를 떠난다. 그리고 고향 땅 외곽에 화실을 직접 지었다. 북면을 온통 창으로 채우고 그 옆에 작은 쪽문까지 냈다. 쪽문의 용도는 대형 캔버스를 정원으로 밀어 내 그림을 전체적으로 점검하고 자연광에 비친 색채를 확인하는 거였다. 세잔만의 시그니처이자 그의 집요하고 고집불통인 성격을 잘 드러내는 독특한 문이다. 


모델에게 “사과처럼 가만히 딱 있으라.”고 외친 화가는 115차례나 모델이 돼준 화상 볼라르를 치 떨게 했다. 볼라르는 세잔의 화실로 가는 길에 노점상에 놓인 사과를 껴안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너희들은 그놈한테 걸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과들은 세잔에게 ‘제대로 걸려’ 세기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유쾌한 반전이 아닌가.


아뜰리에의 사과를 찬찬히 본다. 어디에나 흔하게 널린 사과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간직한 고유한 사과, 세잔의 스타일로 말이다. 예술가의 통찰력은 결국 존재의 본질과 이어지는 게 아닐까. 본질 너머에 있는 이면과 주변의 그림자까지 아우르는 눈이 있어야 개별적 존재에 가 닿을 수 있을테니까.



세잔은 대상을 끈질기게 응시한 끝에 답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형태는 구, 원기둥, 원뿔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그림에서 형태의 해방선언을 한 이 발언으로 입체파의 서막이 열린다.입체파의 대가인 피카소는 자신의 유일한 스승은 세잔이라며 치켜 세웠다. 마티스 칸딘스키도 모두 세잔 키즈들이다. 세상의 소외와 질시를 곰 같은 등으로 받아내며 기존 화풍의 해방을 이뤄 낸 폴 세잔. 그가 만든 풍경 속에 꺽이지 않는 사과가 빛난다.               




고훈실  동화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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