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든 일은 케바케라 그냥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겠냐고 답하곤 하지만 솔직한 생각으로는, 결혼 전에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보더라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
오히려 중요한 건 함께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다. 1년이든 3년이든, 혹은 10년이든 평화롭게 아무 굴곡없이 동거를 하고, 그 생활이 결혼 후에도 지속된다면 동거 당시 서로의 모습과 그 후나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 수년을 같이 살 건 몇개월을 같이 살았건 동거 중에 혹은 결혼 후에 커플이 처한 상황이 급변할 때, 동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가중될 때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방식과 함께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가 동거 중에 생활하면서 파악이 된다면 그게 결혼 전 동거의 가장 큰 의의일 것이다.
결혼 전 3년 간 지금의 와이프와 동거를 했다. 당시 둘 다 대학생이었고, 표면적으로는 둘 다 서울에 연고가 없어 절약을 하려고 선택했지만 사실은 같이 있는 게 좋아서였다.
동거를 하면서 정말 크게 싸우거나 생활적인 부분에서 다툰 적은 생각나는 게 없을 정도로 없었다. 물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정말 많았지만 연애할 때기도 했고 내가 좀 더 움직이거나 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문제가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난 물건을 쓰면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편이지만 와이프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어서 오히려 정리하는 순간 물건이 어딨는지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정리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몰아서 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럼 항상 정리하는 내 쪽에서 불만이 있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난 오히려 뭔가를 정리하면서 나름의 만족감을 얻는 성향의 사람이고 와이프는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부딪히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이런 부딪힘은 평소 둘다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평온할 때는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갑자기 아기가 생겨 시간, 금전, 심적인 것 중에 하나라도 여유가 사라지고, 평온함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평소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조그만 문제로도 잘잘못을 따지며 언성을 높이기 십상이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고 저녁에 잠을 못자기 시작하면서 체력이 후달리고, 체력이 후달리니 평소에 잘만 하던 집안일이나 정리할 때 피곤함과 겹치게 되니 평소 정말 아무 생각없던 청소나 허드렛일에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곤 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와이프는 연애할 때와 너무 다르다고 투덜대곤 했고.
상황이 다시 평온해지면 이런 짜증이나 부딪힘을 줄어든다. 물론 이런 부딪힘과 짜증을 겪으면서 내가 예상티 못했던 내 모습과 내 모습을 예상치 못했던 상대방의 마음 사이에 간극이 생기며 또다른 불화를 낳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간적, 금전적, 심적, 체력적 여유가 뒷받침 되는 한 서로간 불화는 줄어든다.
동거는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압박이 주어지는 환경에서 상대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시간적 압박
금전적 압박
심적 압박
체력적 압박
따라서 이런 상황이 주어지지 않은 채 정말 서로 좋은 것만 보는 동거는 결혼 후에 동일한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동거'를 해봤으니 '결혼'도 비슷할거야라는 가정이 전혀 성립하지 않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