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은 바로 그것
Unhappy fortune!
가장 유명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뭘 골라야 할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놓고 고민할 겁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 주제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로맨스는 언제나 뜨겁게 사랑하는 두 연인과,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맞부딪히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그 힘을 끝내 이겨내면 해피엔딩으로, 그 힘에 좌절하게 되면 새드엔딩으로 마감되는 것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힘은 바로 집안의 반목이었습니다. 로미오의 몬테규 집안과 줄리엣의 캐퓰릿 집안은 만나면 칼 끝에서 불꽃이 튀는 사이였던 것이죠. 그런데 두 집안의 아들 딸이 우연히 만나 그만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첫 눈에 반한 두 사람이 이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두 집안 사람들은 여전히 티격태격 하다가 로미오의 절친 머큐쇼가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의 손에 죽게 되고 로미오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 티볼트를 죽이게 되죠.
로미오는 이 사건에 대한 처벌로 베로나에서 추방당하고 신혼 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이 결혼한지 모르는 줄리엣의 아버지는 줄리엣을 정혼자 패리스와 서둘러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이때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준 로런스 신부님(수사)이 묘책을 내놓습니다. (마침 약초연구가이도 했던!) 로런스 신부님은 줄리엣에게 특제 물약을 주면서 결혼 전날 밤 이 약을 마시면 42시간 동안 죽은 것처럼 잠들었다가 깨어날 거라고 얘기합니다. 줄리엣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이게 해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로미오에게 이 사실을 전해 무덤에서 줄리엣을 데리고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것이죠. 신부님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로런스 신부님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일로 어그러지고 맙니다. 로미오에게 보낸 편지가 전달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로런스 신부님은 동료인 존 수사에게 편지를 부탁했는데, 존은 당시 일고 있던 전염병 때문에 격리가 되어 로미오에게 갈 수가 없었고, 그러는 사이에 로미오는 줄리엣의 장례 소식만 전해 듣게 됩니다. 편지가 전달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로런스 신부님이 제목처럼 탄식합니다. 아, 불행이고 불운이다(5막 2장).
결국 로미오는 줄리엣을 따라 죽으려고 독약을 구해 베로나로 돌아옵니다. 글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 모두 죽는 것으로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끝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가정이란 말을 로맨스로 바꿔도 이 문장은 성립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건 아주 귀한 일이지만,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는 고만고만한 것입니다. 어떤 로맨스를 특별하게 하는 건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저 나름의 갈등입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연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힘, 악당, 제도, 편견 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가와 당시 사회가 겪은 사건들을 녹여 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6~7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 전쯤인 1592년에 런던에는 흑사병이 창궐했었습니다. 당시 행정부는 감염의 확산을 막으려고 (교회 예배를 제외한) 모든 군중 집회, 대중 오락을 금지했습니다. 극장도 이때 문을 닫아야 했죠. 당시 배우들은 지방으로 순회 공연을 떠났고, 셰익스피어는 이 시기에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능욕> 같은 시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 흑사병을 이겨낸 사람들은 다시 극장에 모여 연극을 즐겼지만, 작가도 관객도 모두 흑사병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흑사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관객들은 줄리엣과 로미오가 전염병 때문에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겠죠.
코로나19로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로런스 신부님의 이 대사가 떠올라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히 이 시기를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
*행운, 운명으로 번역할 수 있는 fortune은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인 직후에 내뱉는 말이기도 한데, 이건 다음에 살펴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