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zich May 01. 2019

나의 길 편식

 저의 직장은 성수동입니다. 한동안 성수동에 살기도 했었지만, 1년 전에 결혼을 하면서 목동으로 집을 옮겼어요. 이사를 하면서, 걸어서 15분이면 되었던 출퇴근 시간이 지하철이든 승용차든 한 시간 남짓으로 늘어나게 됐어요. 다양한 상황과 조건에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하는 편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한시간 넘게 부대끼고 낑겨있는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습니다. 한 동네에서 진득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는 조금 스트레스이기도 했고요.


 그런 저는 자전거를 사랑합니다. 뭇 아이들이 그렇듯 어릴 적 보조바퀴를 달아둔 채로 자전거를 처음 배웠고, 어른이 되어 ‘제대로’ 자전거를 탄 지는 3년이 조금 넘은 것 같네요. 워낙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자전거를 오래 탄 친한 지인과 함께 라이딩을 처음 나가서 잠수교를 넘던 중 뻗어버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를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이나 더 나은 기록을 세워야겠다는 욕심보다는 나와 도시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가는 좋은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멀어진 이동거리, 그 곳에 다다르려면 어떤 형태로든 ‘운동(運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그 시간을 제가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면 좋겠더군요. 그래서 자전거를 꺼내들었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편도 20km가 되기도, 26km가 되기도 하는 서너 가지 루트를 시도해봤어요. 어떤 길은 출퇴근 시간의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느라 불편하기도, 어떤 길은 한강을 따라서 비슷한 풍경에 조금 지루해지기도, 또 어떤 길은 요철이 심해 자주 속도를 줄여야 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죠.


  한 동네에서 진득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듯, 제가 가장 편하고 익숙하게 시간을 보내는 길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나와 잠시동안, 열심히 수신호를 하며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는 구간은 제가 조심스레 몸을 푸는 구간이 되었습니다. 조금씩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하면 한강의 지류인 안양천변을 따라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왕래가 많지 않은 강변이다보니 도로가 잘 정비되어있지는 않지만, 이리 저리 조향도 해 보고 몸의 리듬감을 찾기에 좋은 길입니다. 그렇게 십분 가량을 타다 보면 숨이 가빠오다가 호흡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이내 탁 트인 한강이 저를 맞이합니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이면 비릿한 물 냄새가 나기도 하고 조금 젖은 노면에 타이어가 닿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도 하죠. 그렇게 30분 쯤이 지나면 성수동에 높이 솟은 빌딩 하나가 보이고 조금씩 피치를 내리며 쿨 다운을 합니다.
 

 자전거와 함께 하면서, 멀다고만 생각해 버리는 시간이라고 여겼던 그 길은 제게 하나의 공간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수십 번 이 길만을 꼭꼭 씹어 편식하면서 어떻게 씹고 이해해야 할지, 나를 이 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배우게 되었고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 길을 대하는 데 있어 위와 같은 패턴이 생기게 된 것이죠. 패턴을 익혔을 때 느끼는 편안함은 지루하다기보다 제가 더 적극적으로 길 위에서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이를테면 조금 더 멀리, 다른 풍경을 보도록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요. 그제도, 어제도 저는 조금씩 다른 나무와 냄새, 소리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제 공간은 매일 조금씩 변화합니다.


 여러분이 아깝게만 느꼈던 시간,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길을 여러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이 여러분의 공간이 되는 것은, 어릴 적 부모님이 그렇게도 하지 말라던 ‘편식’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조심스레 제안해봅니다.


- 아직은 쌀쌀하지만 미세먼지가 덜해 행복한 4월 30일, 서울에서 자전거 타는 용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