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zich Oct 27. 2017

[IdeasCity]"Space to Place(3)"

루트임팩트 컨텐츠 크리에이터, @yonzich의 뉴욕 출장기 - 3/4

2. To Make Change : Placemaking


 지난 출장기 2편을 통해 Sara D. Roosevelt Park로 향한 우리가 마침내 맞닦뜨린 IdeasCity를 소개했다. 출장을 떠나기 전에는 0.1도 알지 못했던 미지의 페스티벌이 과연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 그릇인지, 누가 이 그릇을 만들고 닦는 것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보았다. 당초 3편의 시리즈로 끝낼 이 리뷰를 결국 4편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번 편에서는 IdeasCity를 'Placemaking'의 렌즈로 바라본 소회를 남겨보도록 하겠다.




- "PLACE, a short introduction" by Tim Cresswell -  


 시간을 거슬러 6월 쯤이었던가. 1편에서 언급했듯 오늘살롱에 심어낼 컨텐츠가 무엇일지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IdeasCity 출장을 추천해 준 팀장님은 당시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Tim Cresswell이 쓴 「Place, a short introduction」무려 영문원서 였다. 사실 물리적 공간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접근은 시도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개념을 잡아가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역시 책의 골자는 가장 첫 부분 아니면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고 누군가 말했듯 첫 순서인 "Introduction : Defining Place"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시작은 'Space'와 'Place'를 구분하는 것에 있다.



 Space의 사전적 정의는 [1.(비어 있는,이용할 수 있는)공간  2.(비어 있는)공간   3.(장소가)널찍함] 과 같다. 하지만 'Empty Space'라는 말이 버젓이 있는 것 처럼, 사전적 정의에 등장하는 '비어 있는'이라는 해석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해진다. 본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해석해보면, Space는 곧 '주체의 의도가 아직 담기지 않은'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 그렇기 때문에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해석 보다는 아직 인간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공간이라는 해석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반면 Place의 사전적 정의는 [1.장소   2.(특정한 도시, 건물 등을 가리키는)곳   3.(특정한 목적을 위한)장소] 와 같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Place의 개념적 정의는 세 번째 의미와 가장 유사하다. 다만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를 투영하여 기획된 물리적 공간'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즉, '공간(Space)'가 '장소(Place)'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주체와 더불어 이들의 목적과 의도가 필수적이라는 의미이다.


 자, 그렇다면 IdeasCity는?!




- Placemaking의 첫 걸음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


 오후 시간의 포럼에서, 연사로 자리한 Ingrid LaFleur(잉그리드 라플뢰르)는 이렇게 말했다.


Ingrid LaFleur, Arts AdvocateㅣThe Alternative UK (https://www.thealternative.org.uk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듯, 이 곳(Sara D. Roosevelt Park)는 이제 잘 이용되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자리한 우리에게 그것은 큰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곧,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곧 변화로 응답합니다. 아무리 낙후된 곳일지라도 프로그램이 있다면 생기를 찾습니다. 가지고 있는 조건이 그리 좋지 못하더라도,
다만 그 공간(Space)이 모두를 위해 열려있는 곳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활력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녀가 나와 같은 책을 읽었을지는 모르겠으나 #Placemaking 을 머릿속에 꼭 쥔 채로 공원을 돌아다니던 내게 너무나도 뚜렷이 들리는 말이었다. Sara D. Roosevelt Park는 분명 인간 주체의 의도가 투영된 Place가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특정한 Place가 언제나 고정불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Places are not always stationary). Sara D. Roosevelt Park는 매우 오래된 장소였고, 장소이며, 이제는 휴식과 안정의 의도가 사라진 하나의 '형태'혹은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Place보다는, 이제 의도를 기다리는 Space로 자리한 이 공원은 이제 New Museum과 그들의 IdeasCity를 만나게 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도시 속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Sara D. Roosevelt Park는 분명 낙후되고 보잘 것 없는 장소일지 모르나 새로운 기획과 의도를 반영해야 하는 Placemaking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장소라는 사실이다.


▲ 가운데에, 공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공터로 자리잡은 곳이 Sara D. Roosevelt Park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처럼, 정말 뭐 없다. [사진출처 : DamnMagazine )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새로운 Placemaking을 하고 창조성의 발판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태도라고 한다면, 역시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등장하는 이슈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도 한국의 도시문제를 바라보는 보편적 시각과는 조금 달랐다.(한국의 보편적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오해는 금물)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시에서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든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개념이며, 다만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빈 공간(Empty Space)에 새로운 팝업(Pop-Up)과 프로그램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시민(Citizen)'이기에 곧 공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최소한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변화와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시 한 번 보다 창조적 차원에서의 도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을 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나 이로 인한 부정적인 이슈가 크게 주목받다 보니 '젠트리피케이션 = 부정적인 것' 의 수식이 습관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현상들을 어떻게 카테고라이징 하느냐에 따라 문제에 대한 해석과 해결은 너무나도 달라질 터,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관점은 Space와 Place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갈무리하겠다.




-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


 Sara D. Roosevelt Park라는 '현실의 조건'을 명확히 받아들인 IdeasCity는 그들의 의도를 광장에 어떻게 담아냈을까. 포럼, 어셈블리, 스튜디오라는 카테고리를 3개의 원(Three Rings)이라고 표현한 것은 공원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것임을_ 당일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자연스레 깨달았을 것이다.


▲ 큰 원(Forum)과 작은 원(Assembly, Studio)으로 구성된 페스티벌은 공원의 형태 그대로이다.


 참 무심한 듯 툭툭 세팅된 것 같지만, IdeasCity는 여러 형태의 공간과 서로 다른 종류의 Ring을 운영하는데 있어 그에 걸맞는 논리를 녹여두었다.



Ring 1. Forum


세 개의 Ring 중에서, 유일하게 1대 다(多) 방식의 연설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은 조립식 가구들로 채웠다. 가장자리는 편히 앉을 수 있는 3인용 개방형 텐트들이 원을 이루고 있으며, 이 원 안에는 나무와 천을 활용한 두 가지 크기의 스툴(3인용 스툴, 1인용 스툴)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가장자리에 앉아 포럼을 듣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고, 원 안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내용을 받아적는 사람들도 있었다나도 역시 그 사람들 중 하나. 들고남이 적은 것이 예상되거나, 그런 편이 더 유리한 공간이기에 취사선택하여 앉을 수 있는 3가지 형태의 구조물(가구)을 배치한 것이다.




Ring 2. Assembly


 첫 번째 Ring인 Forum에서 진행되는 주제가 Assembly에 설치된 모니터에 한 줄로 뜬다. 그러면, 이 Assembly Ring에서는 동그란 형태로 둘러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난장토론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정리되기도 한다. 주제는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에 도중에 빠지는 사람도, 새로 원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은 단 한 줄의 스툴만 배치했다. 스툴 안쪽에 자리한 사람은 자연스레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뒤늦게 온 사람들은 스툴 바깥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스툴에 자연스레 앉게 되는 형태이다.




Ring 3. Studio


Studio 부스에서 만난 팀장님 친구, Sacha.

 Studio로 꾸며진 Ring은, 두 방향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출구와 입구가 따로 나누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디에 위치해 있든 꽤 균일한 집중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고, 원을 빽빽하게 채워서 스튜디오를 배치하지 않고 양쪽에 각 5개씩 배치해두었다.

 사람이 다소 많이 몰려도 웬만하면 Studio 벤더들과 금방 금방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곳에서 팀장님의 친구인 Sacha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A/D/O라는 디자인 팀이 이번 IdeasCity를 채우고 있는 나무 구조물들을 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세계를 거점으로 "반식민 운동"을 벌이고 있는 "Decolonize This Place"의 부스를 알게 된 것이 고무적이었다. 이들은 특정 권력과 이념에 의한 압제와 구속에서부터 해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데, 무엇보다 이처럼 급진적인 성격의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레 Studio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판매중인 티셔츠가 좀만 예뻤어도 하나 샀을텐데.




 이 오래된 공원, Sara D. Roosevelt Park를 Place로 바꾸어내는 데 IdeasCity가 투입한 물리적 장치는 그저 3가지 종류의 의자와 스크린이 전부다. 나머지를 채운 건 포럼에 초대된 연사와 스튜디오 주체들, 그리고 이 곳에서 IdeasCity가 열린다는 것을 이전부터 혹은 당일에 알게 된 시민들이 전부다. IdeasCity는, 일상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 고민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또 이를 말할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광장은 근대사회의 도시 이후 찾아볼 수 있는 의도된 Place임이 분명하지만, 이제는 그저 '있는 곳'이 되었으며 다시금 'Place 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IdeasCity 페스티벌의 의도가 곧, 시민이 주체임을 전제하고 모두가 함께 도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것'으로 한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곧, IdeasCity의 Placemaking은 덜어내기보다는 해야 할 만큼만 해낸 결과로 보였다.


 특정한 Space가 의미있는 장소(Place)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1. Location(위치)  2. Locale(현장)  3. Sense of place(장소성_풀어서 해당 장소만의 '특색'이라고도 풀 수 있겠다) 가 필요하다고 Tim Cresswell은 말했다. 이론이 현실세계에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될 때 느껴지는 쾌감이란!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기도 했다.


이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고 왔어야 했는데, 왜 안 먹었을까? 막바지 연재를 앞두고 이런 사진만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해야만 하는 것'을 명확히 직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뉴욕에 도착하기 전 까지만 해도 별천지를 예상했던 나는 뒷통수를 크게 한 번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떤 표현을 해 내는지, 얼마나 창의적인 기획인지를 뽐내는지를 기대했던 내게 IdeasCity가 내게 한 말은 그저 "너 자신을 알라"였기 때문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지금, 내일, 그리고 먼 미래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안의 우리 팀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런 나와 우리에게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할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의 내용을 담아낼지에 대한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터, 출장 중 뮤지엄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한국에서의 고민을 덤덤히 나눈 우리의 이야기에 결국 답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서는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고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함께 출장길에 오른 서소령 매니저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겠다. 1L짜리 캔맥주를 먹고 헤롱대면서 나눈 말들과 시카고 현대미술관에 퍼져 앉아 중얼대던 수다들이 아직 나의 아이폰 안에 잘 보관되어있어 다행이다. 출장이라고 해서 아예 딴 짓을 안하지는 못했기에, 우리가 겪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우리만흥미로우면안되는데 풀어보도록 하겠다.


 벌써 다음이 이 출장기의 마지막 연재다. 포기하지 않고 연재를 지속하는 나에게 자화자찬의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역시 여러분의 리액션을 기다린다.





                                                                                                                                                          - 3/4편 끝.




발행ㅣ루트임팩트 마케팅 팀 컨텐츠 크리에이터 권용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