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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zero Apr 02. 2024

슈퍼에서 보물찾기

    첫 이주일은 밥을 사 먹었다. 다음 일주일은 가전제품이 배송되어서 전자레인지로 데울 수 있는 햇반과 도시락을 먹었다. 식사준비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지만, 슬슬 사 먹는 음식이 질리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주문한 프라이팬과 접시, 냄비들이 배송되었고 본격적으로 집밥 하기가 시작되었다.

    된장찌개와 미역국을 끓이고, 떡국을 만들고, 소고기도 사서 구워 먹고, 잔멸치도 볶았다가, 한 끼는 식빵과 스크램블, 과일로 브런치를 만들고… 아, 삼삼하고 싱거운 집밥이 참 좋은데, 왜 이곳에는 ‘쿠팡 프래쉬’와 ‘배달의 민족’이 없는 걸까?를 아쉬워하며, 매 끼니 뭘 해 먹지?를 말풍선처럼 달고 살았다.  


   

    며칠 후, 불고기 재료를 사러 슈퍼에 갔다. 장바구니에 소고기와 양파, 버섯, 대파를 착착 넣었다. 한국서 가지고 온 참기름, 간장, 기본양념들이 있으니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다, 마늘! 간 마늘이 없다!

    그때부터 간 마늘 찾기 삼매경이었다. 통마늘, 구운 마늘, 튀긴 마늘 슬라이드는 있는데 내가 원하는 생 간 마늘을 없는 거다. 이마트 가면 쌓여있는 초록색 뚜껑의 간 마늘이 이렇게 안 보이다니. 결국 슈퍼 직원에게 파파고를 들이밀면서(아, 시작은 스미마셍으로!) 간 마늘 좀 찾아달라고 했다. 뭐라 뭐라 말씀하시더니 어디론가 뛰어가신다. 중간 말은 전혀 못 알아듣겠으나, ‘쪼또마떼 구다사이’라고 하셨으니 기다리면 간 마늘 주신다는 거겠지. 그래, 모를 때는 뻔뻔하게 물어보는 게 최고야,라고 혼자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돌아온 직원은 작은 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시며 생긋 웃으시고는 떠나셨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생 간 마늘이 아니다. 이건 중국 식재료 코너에 있던 기름 먹은 마늘이다. 파파고 이미지 번역 앱으로 유리병 표면의 성분표와 제품명을 찍어 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간 마늘이 이거라니 일단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렇게 카운터로 향하다가     



    맞다, 알룰로스가 필요하다. 설탕보다는 물엿, 물엿보다는 올리고당, 그러다가 당분이 낮은 알룰로스를 나는 음식 때 사용했다. 불고기 양념에 반 스푼 넣으면 맛있는데.

    다시 원점이었다. 이번에는 알룰로스 찾기 삼매경이었다. 이곳에 알룰로스가 있을 리 없으니 비슷한 걸 찾자. 슈퍼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알루로스 비슷한 게 안 보인다. 그냥 갈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넣어야 불고기가 감칠맛 나는데… 이때까지 찾은 시간이 아까워서 라도 내가 기어코 찾아낸다. 불굴의 집념으로 다시 슈퍼를 누빈다. 무슨 보물 찾기도 아니고….  



    하지만 보물 혹은 보물지도조차 보이지 않고, 결국 대안으로 주먹 크기의 일본 꿀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꿀은 여기저기에 넣으면 되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니까. 바구니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향하는데 메이플 시럽이 보인다. 아, 메이플 시럽이 사용하기 더 편하지, 장바구니에서 ‘꿀 아웃 메이플 시럽 인.’ 다시 ‘메이플 시럽 아웃 아가베 시럽 인.’ 그러다가 오가닉 코너에서 요리사 아저씨 마크가 그려진 ‘라칸트 s’를 발견했다. 올레!! 당류와 칼로리는 낮고, 단맛은 난다는 그것. 네가 알룰로스 비스무리한 거구나. 당연히 ‘아가베시럽 아웃 라칸트 s 인’이다.     



    그렇게 불고기 재료를 사 와서 불고기를 해 먹었다. 맛은 어땠을까? 두 끼는 먹을 수 있을 거라 했던 불고기를 가족들이 한 끼에 다 해치웠으니, 맛있었던 걸로 하자. 하하하.

     그런데 정말로 생 간 마늘을 사용하려면 통마늘을 사서 씻고, 다져서 사용해야 된 단 말인가? 일본에선 마늘을 잘 안 사용하니까 아마도 시판용 다진 마늘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잘게 썰어놓은 파, 채 썰어놓은 양배추, 당근, 양파 등은 있다). 음식 맛을 생각하면 직접 생마늘을 사서 다듬어 사용하는 게 좋겠지, 그래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야. 하지만 일을 줄이고자 그동안 시판 간 마늘을 사용했고….. 하지만 이제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머릿속이 마늘, 생마늘, 통마늘, 간 마늘, 썰어놓은 마늘로 꽉 차게 되었다. 일본 와서 마늘 고민을 할 줄이야!


    그나저나 내일 아침은 또 뭐 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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