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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 Soup Mar 06. 2022

예상 밖의 꽃밭

花の都公園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깰 때면, 꼭 창밖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달리는 버스에서 잠이 들었을 때도, 눈을 뜨자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경이롭게 뭉게구름이 가득한 아름다운 하늘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게 제3의 눈이 있어 '일어나, 지금을 놓치면 안 돼!'라는 사인을 주는 건 아닐까.

 그런 경험을, 나는 야마나시에서 똑같이 하고 있었다. 즉, 나 홀로 버스에서 잠에 들었다는 것이다.


 절대 잠이 올 상황은 아니었다. 온천에서 나와, ‘오시노하카이(忍野破壊)’라는 마을에 가기 위해 탄 버스는, 구글 맵에 적힌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야마나시는 예상을 빗나가는 곳이라는 걸 경험해서일까? 당시 나는 ‘어떻게든 어디에든 도착은 할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괜히 버스 아저씨에게 여긴 어디냐고 물어보며 외지인 티를 내기 싫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상하게 위기 상황에서는 역설적으로 졸음이 쏟아진다. 북극에서 잠이 들어버리는 이유가 이런 걸까? 버스 맨 뒷자리는 묘하게 아늑했고 왠지 이대로 계속 달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이 졸음이 몰려왔다.

 

 정신이 들었을 때, 창밖은 온통 나무가 뿜어내는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ままの森’, 아마 ‘그대로의 숲’이라는 뜻의 정류장을 지날 때의 풍경이 나를 조금씩 깨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스는 숲을 지나 작은 마을을 돌더니(아마 나의 원래 목적지 ‘오시노하카이’가 아니었을까), 내가 처음 탄 곳으로 와버렸다! 어쩌다 보니 마을버스를 관광버스처럼 이용해서 한 바퀴를 돈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졸음이 완전히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계속 버스 투어(?)를 즐기고 있는데, 저 멀리 드넓은 아름다운 꽃밭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 봐도 우와, 소리가 나올 만큼의 풍경이었다. 나처럼 투어를 즐기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구나!’라는 촉이 온 나도 덩달아 내렸다.


 황홀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대지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있었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마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꽃밭에서 꽃들로 온통 시야를 압도당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천국에 도착한다면, 이런 느낌으로 환대받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많아 붐볐다면 관광지 같은 느낌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일까? 아까 버스에서 내린 열몇 명의 사람들 빼고는 전혀 없어, 우리가 마치 선택받은 사람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보다 꽃이 훨씬 많은 이곳을 자유롭게 걷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나 그런 자유로움과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함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쓸쓸해진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친구, 애인, 부모님과 함께 꽃밭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유로운 혼자’가 아닌 ‘고립된 혼자’로 오전 시간을 보냈던 나는 아직 자유로운 혼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셀카봉으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셀카봉으로 어떻게 이 많은 꽃들과 둘의 모습을 온전히 담겠는가? 외국인인 내가 일본 사람에게 일본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후쿠오카에서는 나에게 길을 물어본 일본 여자아이들도 있었으니 별 상관없나.), ‘제가 찍어드릴까요?(私が撮りますか)’라고 여쭈어봤다. 그렇게 두 분의 사진을 찍어드리니, 할아버지는 내 사진을 찍어주셨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타이머를 맞추고 내 사진을 몇 장 찍고, 자유로운 혼자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야마나시에서 꽃구경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다! 이 험난하면서도 평화롭고 제멋대로인 곳을, 나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살아보는 척’ 하기에는 약간 어렵지만, 도쿄나 오사카에서는 느끼지 못할 야마나시만의 매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P.S. 드넓었던 꽃밭의 이름은 '하나노미야코공원(花の都公園'이었다. ‘꽃의 도읍’이라는 뜻인데,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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