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 무라카미 하루키
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
남편도 아이도 내가 한숨도 못 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뭔가 말을 하면 병원에 가라고 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병원 같은 데 가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나 혼자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녀가 왜 잠을 못자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잠을 못 잔 지 십칠 일째다.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시작한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하루키에게 빠졌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상실의 시대를 극찬했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인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해변의 카프카는 정말 좋았다. 그래서 몇 권을 더 집어 읽었다. 1Q84,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프터 다크, 잡문집 등등.. 그러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만났다. 그 소설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아무튼 하루키 소설에 어느정도 익숙한지라 그다지 놀라운 전개는 아니었다. 그가 자주쓰는 단어처럼 기묘할 뿐. 나는 의아해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내 생활은 표면적으로는 이전과 달라진 것 없이 흘러가고 있다. 매우 평온하게, 매우 규칙적으로. 나는 아침에 남편과 아이를 보낸 다음에 여느 때처럼 내 차를 몰고 쇼핑을 나간다.
그 다음부터는 잠을 자지 않는 그녀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 지가 나타난다. 그녀는 치과남편을 둔 전업주부다. 그녀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게 흘러간다. 남편과 아이가 없는 동안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때때로 수영을 한다. 그녀는 그녀의 몸매선을 좋아한다.
약간의 특이사항이라고는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것인데 남편이 집에서 점심먹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린애처럼 자연스럽게 웃을 줄 아는,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남자로 묘사된다. 그녀는 그의 얼굴이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어딘가 콕 집어서 불만스러운 점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뭔가 어색해 보이는 그런 얼굴. 하지만 그런 생각을 남편앞에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녀 역시도 종잡을 수 없는 인물같다.
그것이 내 생활이다. 즉 잠을 못 자게 되기 전까지의 내 생활이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은 일의 되풀이였다. 나는 간단하게 일기 같은 것을 쓰고 있지만 이삼 일 깜빡 잊고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요즘 내 일상같다. 며칠 날짜가 바뀌어도 그다지 문제가 생기지 않는 나날들. 금요일에 한 일은 목요일과 비슷하로 목요일에 한 일은 토요일과 비슷하다. 일을 하고 과일을 자르고 바디크림을 바르고. 나는 지극히 평범한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말했다. 매일 눈을 뜨면 가방을 메고 도서관에 가. 텅 빈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점심을 먹어. 그리고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지. 그게 내 일상이야. 다음날도 그렇게 보내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지. 어느날 샤워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샤워같은 일 따위를 매일 해야할까. 어자피 아무도 만나지 않는 24시간인데. 이런 일상적인 일을 매일 반드시 반복해야만 할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을 하는 날이면 저녁을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틈이 나는 건 고작 10분정도. 나는 그 간헐적인 10분동안 샌드위치를 먹는다. 10분동안 저녁을 먹는다고 세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나는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을 갈망한다. 세상에는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일처럼 적정한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아름다울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샌드위치의 마지막 한 입을 베어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이 샌드위치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섭취하고 있구나. 신체온도를 36.5도쯤 유지하고 1분동안 심장을 100번 뛰게 하고 그 혈류를 다른 신체의 말초혈관까지 보내기 위해서 그렇게 생존을 위해 영양소를 흡수하고 있는 중이구나.
잠이 오지 않은 첫째 날 밤의 일을 나는 세세한 부분까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안 좋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둡고 질척질척한 꿈이었다.
그녀는 악몽을 꾼다. 꿈에서 한 비쩍마른 노인이 있었다. 뺨은 움푹 파였고 눈은 아주 큼직한 노인이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표정없이 그녀를 시종일관 응시할 뿐이다. 나는 그녀가 되어 그 상황을 상상해봤다. 정말 그녀 말대로 질척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러다가 노인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음을 그녀는 알아차린다. 주전자였다. 노인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다. 그는 주전자를 기울여 그녀의 발에 물을 붓기 시작한다. 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그녀는 발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을까 공포에 떤다.
하루키다움이 묻어나는 꿈이다. 역시 개연성같은 건 없다. 대체 노인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 노인은 그녀 다리에 물을 뿌렸을까. 나는 의아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졸음이 올 때까지 책이나 읽자고 생각했다. 침실에 들어가 책장에서 소설 한 권을 찾아왔다. 불을 켜고 뒤적뒤적 책을 찾았는데 남편은 한 번도 뒤척이는 법이 없었다. 내가 골라온 책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내가 그때 읽고 싶었던 것은 길고 긴 러시아 소설이었다.
잠이 오지 않자 그녀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긴다. 책읽기다. 아마도 새로운,이라는 말보다는 되찾은,이 어울릴 것 같다. 그녀는 책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학생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그녀의 일상은 책이라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용돈이 생기면 언제나 책을 샀다. 식욕보다는 활자욕이 왕성했고 그것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언제 마지막으로 책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책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깨닫는다. 오래전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각들을. 마치 오랜만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 기분좋은 바닷바람을 느끼는 사람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지금에 와서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이라면 그녀는 왜 그토록 굶주린 육식동물처럼 책을 읽었을까. 그녀가 읽은 무수히 많은 책 속 활자들은 전부다 어디로 잠식해 버렸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그녀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걸까.
상권의 중간쯤을 넘어선 책장에 초콜릿 부스러기가 끼여 있었다. 초콜릿은 바낙 말라 부슬부슬해진 채 책상에 달라붙어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분멍 초콜릿을 먹으며 이 소설을 읽은 걸이다. .... 하얗게 변색한 오랜 옛날의 초콜릿 조각을 바라보는 사이에 나는 간절히 초콜릴이 먹고 싶어졌다. 옛날과 똑같이 초콜릿을 먹으며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었다.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처럼 그녀는 언제부턴가 초콜릿을 먹지 않게 되었다. 남편이 그녀가 단 것을 먹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치과의사인 것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책장 사이에서 초콜릿 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의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간절하게 초콜릿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가디건을 걸치고 곧바로 편의점을 향한다. 그러고는 초콜릿을 사서 한 입 베어먹는다. 그녀는 오랜만에 빛을 본 사람처럼 행복하다. 이루말할 것 없는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한 달 전 일요일 오후.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밤사이 내린 눈이 온 지붕을 덮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추운 날씨인데 눈까지 오다니. 한숨을 내쉬며 나는 고개를 창너머로 내밀었다.
그 순간 난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이 보였다. 그냥 눈을 만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눈을 한움큼 쥐었다.
초콜릿을 베어먹은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 날의 눈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잠이 오지 않은 뒤로 내가 생각한 것은, 현실이란 참 얼마나 손쉬운가,라는 것이었다. 현실을 감당하는 일 따위, 너무도 간단하다. 그것은 그저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집안일이고 그냥 성교이고 그냥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계의 작동과 마찬가지여서 한 차례 운용하는 절차를 익혀버리면 그다음은 끝없는 반복일 뿐이다.
여전히 가족 중 그녀의 불면증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도 아이도 그 누구도 그녀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다행인 점은 가정에도 역시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늘 같은 시각에 남편은 점심을 먹으러 집에 돌아오고 아이는 그녀가 준비해둔 간식을 챙겨 먹는다. 가정은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하다.
물론 약간의 변화는 있다. 시어머니가 집에 들르거나 가족끼리 동물원 나들이를 가는 일 따위. 아이가 설사를 할 때는 좀 골치아프긴 하지만 괜찮다. 그 상황에 맞는 메뉴얼을 그녀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약국에 가서 약을 사고 시어머니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고 동물원에서 솜사탕을 사서 아이에게 건내면 된다. 번거롭긴 할지라도 못할 일은 없다. 그녀는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낸다.
아무리 바쁜 하루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존재를 뒤흔드는 사건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않고 도시를 휩쓰는 바람처럼 시간에 쫓길지언정 그녀는 평온하다.
어떤 책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인간은 사고에 있어서도 육체의 행동에 있어서도 일정한 개인적 경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그 저자는 말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의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존재이고, 한번 만들어진 그런 경향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다. 즉 인간은 그러한 경향의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잠이야말로 그렇게 한쪽으로 쏠린 경향을 중화해주는 것이다.
어떤 책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인간은 사고에 있어서도 육체의 행동에 있어서도 일정한 개인적 경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그 저자는 말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의 패턴을 만들어나가는 존재이고, 한번 만들어진 그런 경향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다. 즉 인간은 그러한 경향의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잠이야말로 그렇게 한쪽으로 쏠린 경향을 중화해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직업에 대한 첫 번째 메세지가 나온 장면이었다. 인간이란 직업을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루키는 이렇게 답한다.
삶은 단순한 기교의 반복이다. 어려운 일은 없다. 그것은 기계의 운용방식과 비슷해서 한 차례 운용방식을 익혀두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나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마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순차적으로 만들듯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남편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 삶은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하지만 그녀는 더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평온할지언정 존재감에 아무런 동요가 없는 그런 삶을 그녀는 바라지 않는다. 잠이 일상적인 기교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쌓이는 은폐된 감정을 삭히는 물리적인 작용이라면 그녀의 몸은 잠을 거부하기로 한다.
소설 앞 부분에 그녀는 노인이 나오는 악몽을 꾼 적이 있다. 그 노인은 그녀의 존재감을 뒤흔들기 위해 나타난 정령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을 뿌린 건 그녀의 메말라버린 사고체계를 각성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잠을 안 자게 되면서 시간을 얻었고 그 시간 속에서 잊혔던 과거의 자신을 만났다. 그녀 곁에는 톨스토이가 있었고 은박지에 쌓인 초콜릿이 있었다. 그녀는 안나 카레니나에 감정을 이입하며 책을 읽고 달콤함에 젖어 들었던 소녀였던 것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나는 누구인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삶은 버거움을 넘어서서 무척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런 것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서는 사회가 달리는 속도에 발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속여야 고객을 응대할 수 있고 상사에게 폭언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속여야 붓을 놓고 회계업무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은행이자를 갚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꿈을 잊어
야 출근을 하기 위해서 오늘 밤 나는 잠에 들 수 있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삶을 낭비한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삶의 본질만을 마주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 진짜 나와 조우하는 것. 그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라는 직업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