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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르 Nov 06. 2019

세상을 버닝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 <버닝> 뒤늦은 감상후기

삶의 무게만큼 거대한 택배 물류를 나르는 종수(유아인)은 우연히 만난 혜미를 점점 좋아하게 된다. 혜미는 리틀 헝거이면서도 그레이트 헝거인 소녀다. 그녀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가녀린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삶을 산다.

벤 이란 남자는 그들이 사는 불가해한 삶의 대척점에 사는 사람이다. 좀처럼 알 수 없는 직업을 가진 그는 시간과 돈을 모두 소유한 듯 보인다. 그는 호화로운 집에서 자신을 위한 재물인 만찬을 즐기며 살아간다.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그에게 종수는 혜미마저 빼앗길까봐 마음을 조린다.

벤은 대마를 피고 외롤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그것으로도 삭히지 못한 공허함의 잔여물을 태우기 위해 이따금씩 비닐하우스를 태운다. 그녀가 혜미를 정말로 죽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 또한 무료한 세계에서 모종의 희열감을 느끼기 위한 그만의 감정배설구,였을 것이다.  

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진 혜미. 역시나 하루키 소설의 많은 캐릭터처럼 미지의 세계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은 죽거나 사라진다. 사라진 혜미를 걱정하는 사람은 종수밖에 없다. 우물에 빠진 일은 혜미에게 절대적인 고독과 두려움을 안겼지만 그 누구도 우물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세상에 편입하지 못하는 혜미는 그녀가 손으로 그리는 나비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결국 종수는 벤을 죽이며 영화는 끝난다. 아버지를 구원할 수도 혜미를 구원할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벤을 죽임으로써 세상에 조금이나마 복수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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