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디자인 관련 일을 20여 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디자인 컨설턴트로 이번 사업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모집 자격 요건 중에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에 한한다.'라고 되어 있던데요. 그럼 저는 지원이 불가능한 건가요?"
"네 아쉽지만 경력이 있으셔도 전공 학위가 없으시면 안 됩니다."
위의 대화는 얼마 전 시작된 한 공공 기관의 기업 지원 프로그램 중 디자인 컨설팅 인력 모집에서 있었던 일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디자인 싱킹은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나도 교육도 받고 학습해봤지만, 그냥 재미있게 아이디어 내는 워크숍 정도야.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좋게 만드는 일에 전문성이 있은 일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비즈니스 전문가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두 번째 대화는 한 기업의 임원과 직원과의 대화에서 임원이 디자인 싱킹과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한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두 가지 일화의 공통점은 디자인의 개념에 대한 부분입니다. 공공기관도 기업의 임원도 디자인을 협의로 바라보고 있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소위 졸업장으로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정의하고 있죠. 아마도 이면에는 시각적 표현력이 디자인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담긴 듯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화 속 임원의 인식에도 디자이너는 시각적 표현에만 능한 전문가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디자이너의 자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디자이너의 일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는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합니다. 어떤 분야의 디자인을 하느냐에 따라 세부적인 일들은 달라지겠지만, 일을 하는 순서는 제가 정리한 <사진 #1>과 유사할 것입니다.
1. 공감하기(영감 얻기)
디자이너는 고객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통해 솔루션 디자인의 영감을 얻습니다.
2. 아이디어 내기(구상하기)
솔루션을 구체화하기 위한 첫 단계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구상합니다.
3. 설계하기(시스템화하기)
아이디어들을 소재로 적재적소에 배치시키고 수정하여 최종 솔루션의 밑그림을 그립니다.
4. 시각화하기
마지막으로 최종 솔루션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디자인 순서에 따라 일의 범위도 줄어들게 됩니다. 마지막 시각화 단계의 일은 정형화되어 있고 따라서 오랜 숙련이 효율을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보면 위의 두 일화 속 디자인은 디자인의 일 가운데 "시각화하기"로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감하기", "구상하기", "설계하기" 등의 일들을 포함하지 않은 채로 말이죠. 이것은 아마도 결과물에 따른 판단 기준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디자인 일의 순서 관점에서 본다면 "시각화하기"를 제외한 다른 일들에 학위와 같은 특별한 자격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즉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일들이죠. 고객 조사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공감하기"를 좀 더 잘할 것이고, 상품 기획 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구상하기"에 전문성이 있으며, 엔지니어들은 "설계하기"의 실력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 일의 종류에 따른 수준 차이만 있을 뿐 다 할 수 일들일 것입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시각화하기" 만으로는 디자인을 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디자인 결과물의 수혜자인 고객의 문제를 잘 알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체계화시키는 능력들이 모두 필요하죠.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시각화하기"가 숙련된 디자인 전공자들에게만 디자이너의 자격을 부여해야 할까요? "시각화하기"의 역량은 부족하지만 다른 역량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디자이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진 #2>
거리에서 발견한 전동스쿠터입니다. 의자 뒤에 꽂혀있는 노란 우산이 인상적인데요. 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인 햇빛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이용자도 내적 디자인 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디자이너입니다.
++ 그래서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