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 지능(AI)의 발전과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들(ChatGPT)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기대와 위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양면의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동안 텍스트 위주의 결과물을 전해 주었던 Chat GPT는 이제 Multi-modal(멀티모달)이 지원되면서, 누구나 쉽게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기존의 창작자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위협은 비단 창작자들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기대와 위협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그동안 사람의 손을 거쳐서 완성되던 일들, 그중에서도 소프트 파워가 필요한 일들이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비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디자인 산업에 대입시켜 보면, 인공지능 도입의 기대감은 메타버스, NFT, 모바일, 웹 등의 미디어 관련 디자인 분야에서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대감은 새로운 시장의 형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이고, 불안함은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역량의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이러한 양가감정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에 대한 막연한 가설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기존의 일하던 방식이 완전히 인공지능(AI) only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잃어버릴 것이라는 연상을 하고 그 전제하에 갖는 감정이라는 것이죠.
새로운 기술과 방식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을 갖는 일에는 동의합니다만, 단언컨대 불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디자인과 창작의 영역에서는 그렇습니다.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사람은 창작의 동물이고, 문제 해결의 본성을 갖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이어진 창작과 문제 해결의 산물들인 것이죠. 여기에 덧붙여 사람은 효율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같은 방식의 문제 해결보다는 더 나은 효율의 방식을 선호하고 적용한다는 의미이죠. 생성형 AI는 이름 그대로 생성, 결과물 자체에 집중하는 인공지능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동기와 과정, 정확성, 객관성보다는 무언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처럼 보입니다. 만들어진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름다운 것인지,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을 주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 보다는 사람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내는 신기함이 어필되는 것이죠.
우리가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전문가)을 나누는 기준은 기능적 손의 빠름이 아닌 비교되는 가치의 창출에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인공지능의 산물들이 우월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산의 증식 차원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더 낫게 해 줄 만큼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그래서 일반 사람들도 기꺼이 지불할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해서 판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 보면, 디자이너는 왜?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의 관점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먼저, 디자이너는 왜? 디자인을 하는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어떤 기술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불안 없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반면, 디자이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디자이너의 현재 행위에 포커스를 두고 그 생산성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어떠한 영향을 받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전자를 디자인 철학자의 길이라고 본다면, 후자는 디자인 기술자의 길이라 볼 수 있겠죠. 즉, 디자인 철학자는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게 늘 가치 창조를 하고, 디자인 기술자는 환경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인공지능(AI)의 등장 이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툴이 등장할 때마다 있었던 현상입니다. 사진 기술이 등장했을 때, 화가들은 모두 없어질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자, 당신은 디자인 기술자인가요? 디자인 철학자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디자인 행위인가요? 디자인 철학인가요?
<사진#1>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과일가게 콘셉트의 의류 판매 매장입니다. MZ 세대를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데요. 과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과일가게의 경험을 제공하며 팔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가치에 지갑을 엽니다.
<사진#2> 서울시에 시범서비스하고 있는 무인 자율주행 버스의 모습입니다. 무인으로 운행된다는 신기함에 눈길이 가긴 합니다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용객에게 어떤 추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떠오르질 않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포토샾,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룰 줄 안다고 디자이너라 부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대로 볼 줄 알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비로소 디자이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