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좋은 디자인이라면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것이고, 문제를 잘 해결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불편함을 1이라도 줄여주어야 합니다. 불편함이 증가하는 좋은 디자인이라는 역설이 성립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공공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모두를 위한 디자인,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인,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디자인, 어느 정도 규제와 가이드 있어야 하는 디자인... 등등의 생각들이 드실 것 같은데요. 이러한 생각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사회적 당위성과 정당성" 일 것입니다. '사회를 위해 좋은 것이니까 좀 불편해도 참아야 해'라는 생각을 전제한 채로 말이죠. 그런데 이 생각의 이면에 '나는 공공의 대다수이고 나는 불편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문제의 원인이 되는 소수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는 생각도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거리 흡연 문제와 같이 사람들의 취향과 선택에 관한 이슈에 있어서는 더더욱 '나는 불편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불편해도 좋다'라는 생각이 어떤 입장에 있는 사람이던 갖고 있을 겁니다. 어느 한쪽의 취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죠. 다시 말하면 반드시 어느 한쪽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는 좋은 디자인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죠.
그러면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처럼 입장이 다른 이슈가 아니라 환경오염이나 기후 위기 같은 문제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환경 위기로 인한 피해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길거리 흡연 이슈와는 달리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인 입장을 가지게 될 텐데요.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고, 다시 말해 당위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내가 불편해도 환경을 보호하는 (나에게 혜택이 있는) 해결책이라면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디자인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업사이클링, 재생, 친환경 디자인... 등등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디자인들은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기가 좋진 않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왜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회적 정당성과는 달리 이용 빈도가 높지 않을까요? 디자인의 신뢰도 즉 완성도가 낮아서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까요? 제 생각엔 앞서 이야기했던 불편함이 해결되지 않아서 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드실 때 여러분은 어떤 용기를 선호하시나요? 테이크 아웃용 일회용 용기를 선호하시나요? 아니면 다회용 용기를 선호하시나요? 여러분의 선호를 떠나서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하실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회용 용기를 내심 원했던 적은 없으셨나요? 1회용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한 번 사용하고 버린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가치를 제공합니다. 여기에 브랜드로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환경 보호를 위한다는 당위성을 위해 사용자가 포기해야 하는 가치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의미이고, '나는 불편하고 싶지 않아'의 고객의 진짜 니즈를 현재의 1회 용기와 다회용 용기 사용 제도(디자인)는 만족시켜주고 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 주변의 공공 디자인을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돌아보면 어떨까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 그중에서 내가 불편하지 않은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요? 나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요? 내가 자주 이용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아마도 이 질문들에 쉽게 혹은 많이 대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공 디자인의 역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두가 불편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다라는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공공) 디자인의 역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 그 해결의 방향은 사람들에게 공공 디자인의 당위성을 쉽게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기보다는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이용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류는 그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더 편리한 선택을 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 방향성이 바뀌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행위를 불편함을 추구하는 행위로 바꾸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람들이 늘 하던 대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행위를 하지만 그게 사회에 위해가 되지 않도록, 특정 소수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나에게도 쓰면 쓸수록 혜택이 커지도록 디자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불편하지 않습니다.
<사진 #1> 최신형 전기 자동차 택시에 기사님이 부착해 놓은 표식입니다. 아마도 많은 승객들이 문을 제대로 닫지 못해서 기사님이 아이디어를 내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대기업의 전문 디자이너들의 불편한 디자인을 기사님이 해결했네요.
<사진 #2,#3> 미국 스타벅스의 1회용 컵입니다. 우리나라 커피숍의 1회용 컵과 차이가 보이시나요? 뚜껑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셨을 텐데요.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1회 용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불편한 디자인과 1회 용기를 사용해도 환경에 해가 되지 않도록 생분해 소재를 이용해 사용자의 편리함이 유지되도록 하는 디자인의 비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