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일하는 방법의 변화 (Produce에서 Create로)
최근 마이크로 소프트, 구글 같은 세계적인 테크회사들에서는 대량의 감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AI 기술과 인프라의 발달로 난이도가 높지 않은 업무의 경우 굳이 사람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회사에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AI 수준은 매우 높아서 웬만한 주니어급 직원들의 일을 거뜬히 해내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에 말이죠. 일을 해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AI의 성장 속도 또한 인간에 비해 엄청나게 빠릅니다. 보통의 경우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그들을 현장 교육(On the Job Training) 혹은 외부 교육(Off the Job Training)을 일정 기간 시켜야 하고, 팀으로 일하는 환경에서는 여기에 더해 팀이나 상사의 업무 스타일까지 맞춰야 하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일을 배우는 시간과 배운 것을 스스로 해내는 숙련의 시간이 포함되죠. 반면, AI의 경우 교육의 시간이 '0'에 가깝습니다. 스타일을 맞추는 시간만이 필요합니다. 인간처럼 숙련을 위한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불평조차 하지 않죠.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효율적일 수 없습니다. 일을 시키기 위해 가르칠 필요도, 숙련을 위해 기다릴 필요도, 게다가 이런저런 불평에 대응할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을 위해서 굳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AI를 쓰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이처럼 AI의 급속한 발달과 효율성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니즈와의 매칭은 사람들에게 한편으로 공포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직업을 구하기 어렵거나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갖게 만들죠. 소셜 미디어와 심지어 주요 언론에서도 향후 몇 년 내에 사라질 직업, 생겨날 직업을 예측해서 보도하고, 전문가들 또한 그런 예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걱정과 예측들이 실제로 이뤄질까요?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물론 저도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릅니다만,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 인류가 어떻게 산업적으로 발전하고 이에 따른 인간의 일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는 접근을 해보면 어떨까요?
농경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생산성은 결국 얼마나 넓은 땅을 경작하는 가에 달려있었고 그것은 많은 수의 노동력, 즉 사람을 필요로 했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고 친척들끼리 모여 사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이때도 가축이나 농기구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축이나 농기구의 생산과 유통이 어렵고, 가격도 비쌌기 때문일 것입니다. 18세기 증기 기관의 발명과 이에 기인한 산업 혁명은 이러한 양상을 바꿔 놓았습니다. 농업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이전에 비해 농사를 위해 필요한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농기계로 대체되었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공산품을 만드는 2차 산업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의 일이란 대부분 기계를 작동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이었고 이 당시에도 산업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사람들은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2차 산업이 인류에 가져다준 풍요는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이는 더 이상 많은 자녀를 요구하지 않아 가족의 형태와 규모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농사짓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 되었죠. 수요가 공급보다 크던 2차 산업의 시대가 80,90년대 컴퓨터의 발달에 따른 정보화 산업 시대로 넘어가자 기존의 공장 기계를 돌리던 인력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으며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컴맹"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인데, 문맹인 사람의 기회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낮은 것을 컴퓨터 활용 능력에 빗대어 만들어진 표현이었죠. 이 당시 사람들은 너도나도 컴퓨터 활용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했었습니다. 노동 시장의 변화를 가져온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지금의 4차 산업 시대, 이는 단순히 IoT, Big Data, Cloud와 같은 인프라적 측면의 변화의 발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노동력 관점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앞에 언급한 인프라에 AI를 더해 인간의 노동력에서 완전한 기계 노동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기계 노동의 대체는 이전의 차수를 거듭한 노동의 형태 변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역할 변화를 요구했다면, 예를 들어 육체노동에서 기계 노동으로 그리고 기계 노동에서 지식 노동으로의 변화, 이제부터는 사람이 필요 없는 (Unmaned) 산업 환경으로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사례처럼 시대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고 노동시장에서 생존하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는 기존의 사람들 간의 노동 능력 경쟁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육체적 노동력도 지식 노동력도 AI와 기계의 조합을 한 명의 개인 혹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능가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죠. 그럼 우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진 #1>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타본 무인 택시 웨이모. 운전이라고 하는 인간의 물리적, 정신적 노동을 로봇과 자율 주행이 대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많던 택시, 우버 기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진 #2> 중국의 한 호텔에 있는 배달 로봇입니다. 음식을 주문하면 로비에서 객실까지 알아서 배달해 주는 로봇인데요.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앞에서 이야기한 산업의 발달과 이에 따른 인간의 역할 변화에 대한 논리의 출발점은 "생산(Produce)"에 있습니다. 생산성, 즉 결과물의 크기나 양이 어떤 주체에 의해 결정되는가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야기입니다. 생산성이 높아지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노동력 변수가 인간에서 점점 기계, AI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를 좀 다른 시각, 관점으로 살펴보면 어떨까요? 물론 생산도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이고 훌륭한 능력입니다만 이것은 주로 주어지거나 이미 알고 있는 문제를 푸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죠. 이 능력은 일부 동물들도 가진 능력입니다.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아주 특별한 능력은 완전히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Create)"입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관점으로 앞서 이야기한 인간 역할의 변화를 들여다본다면 인간의 역할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창의의 관점은 결과물의 크기나 양의 평가 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얼마나 잘 극복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인류사에 있어서의 커다란 마일스톤은 대부분 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도구의 발명, 기계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 인터넷의 발명, 심지어 AI의 발명까지도 말이죠. 창의의 능력에 의해 세상은 진화하였고 생산성의 개념도 크기도 이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사진 #3> 전기를 필요로 하는 많은 가전제품들의 플러그가 복잡하게 꽂혀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렇게 유선으로 전기를 플러그에 꽂는 게 최선일까요? 창의적으로 해결한다면 어떤 아이디어들이 있을까요?
창의의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무리의 사람들은 아마도 예술 분야, 디자인 분야의 사람들일 텐데요. 개인적 만족과 메시지의 전달을 중요시하는 예술 분야는 생산성과 관련이 적습니다만 디자인 분야는 생산성이, 즉 결과물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의 역할이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인데요. 어쩌면 디자이너들은 이 명제에 매몰되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산이 중요하기 때문에 창의보다는 생산에 좀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생산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디자이너의 능력은 점점 AI에 그 역할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이는 디자이너들도 노동력이 AI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암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불안감은 디자이너의 창의 역량이 생산 역량으로 바뀌어 오던 것을 중단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디자이너의 창의 능력은 현실 사회에서 크게 기대되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디자인 사회에서도 강조되지 않고 디자이너들에 대한 수요가 있는 기업들에서도 창의 능력보다는 잘 만드는 능력에 초점을 두고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왔습니다. 학교의 교육은 취업에 무게 중심이 있다 보니 생산성을 높이는 툴에 대한 숙련도를 중시하는 교육들이 이뤄지고, 회사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창의적 해결책을 좀 더 완성도 있게 꾸미는 역할을 디자이너들에게 부여해 왔습니다. 기업 종속적으로 이뤄지는 디자이너 교육과 육성이 진짜 문제 해결역량인 창의력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어 왔었죠.
저는 디자이너들의 기업 종속적 태도는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디자이너의 생산성을 포함해서,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디자이너의 진짜 역할을 찾는 과정을 갖게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이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의 보유를 깨닫고 이것으로 AI 시대에도 디자이너가 필요함을 역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생산 관점에서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 툴을 배우고 익히던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 관점에서 AI가 잘 생산할 수 있도록 리딩하는 역할을 디자이너들이 맡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사의 마일스톤을 만들었던 창의력이 뛰어났던 사람들을 우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러왔고 이제는 그들을 디자이너라 부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당시에 어떤 직업으로 불렸는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그를 디자이너로 부르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만드는, 생산하는 디자인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문제의 해결책을 창의 하는 능력을 가졌다면 누구라도 디자이너로 불릴 수 있을 테니까요.
AI 시대, 인간은 결국 이전처럼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해야 합니다. 디자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