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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Sep 19. 2018

<명당>, 강남 땅은 이제부터 명당이 될 것인가?

브런치 무비패스 #17


<명당>, 강남 땅은 이제부터 명당이 될 것인가?


천재지관 박재상(조승우)은 세자의 무덤을 정하는 자리에서 세도가 김좌근(백윤식)의 뜻을 거슬러 보복을 당한다. 이후 지방에서 지관으로 명성을 쌓은 박재상은 13년 만에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풍수로 김좌근의 집안을 망하게 하고 기울어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 박재상의 의도를 알게 된 흥선(지성)은 함께 손을 잡지만 그 역시 자신의 아들을 왕좌에 앉히려는 야망가일 뿐이다. 땅의 기운을 통해 세상의 운명을 알았던 박재상은 세도가와 권력가들의 욕망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것들이다.


기본적으로 <명당>은 2013년작 <관상>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방의 능력 있는 지관(풍수론에 기반하여 집터와 묘터를 정하거나 길흉을 평가하는 사람)이 세도가와 권력가들에 알려져 국가의 운명에까지 관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조금 다른 설정이 있다면 박재상은 그전에 나랏일을 하던 사람이었다는 점, 세도가의 계획을 방해해 가족이 죽음을 당했다는 점, 그로 인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는 점 등이 다르다. 그리고 <관상>과 마찬가지로 큰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세상에 나오기를 막는다. 누구든 땅의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거나 권력을 누리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영화의 큰 줄기는 책임감과 복수심이다. 왕의 묘를 정함에 있어 세도가인 김좌근은 좋은 땅을 자신이 차지하고 세자의 묘를 좋지 않은 곳에 모신다. 박재상은 이를 알았지만 막을 힘이 없었다. 김좌근은 박재상이 자신의 뜻을 거슬렀다 생각해 가족을 모두 죽인다. 낙향해 지관으로서의 능력을 키운 박재상은 김좌근에 대한 복수와 함께 왕의 묘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잡는 것'이었다. 왕의 묘를 다시 명당에 모시고, 장동 김씨 가문을 멸문하게 하려는 것이다. 권력을 좇는 세도가가 땅의 기운까지 받아 잘못된 권력을 키우고 왕권까지 위협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관상>과 조금 다른 부분이라면 <관상>에서는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세도가들의 권력 다툼으로 들어가지만 <명당>은 복수와 책임감으로 적극적으로 그들의 싸움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관상가나 지관 모두 천기를 누설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 잘못된 권력자들이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입을 다물기로 했다는 점이다. <관상>과 <명당>이 다른 점은 박재상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상>의 내경(송강호)은 수양대군에 맞서는 형태지만, 박재상은 장동 김씨의 편도, 흥선의 편도 아니다. 그의 눈에는 모두가 권력에 미친 세도가로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영화는 장동 김씨와 흥선의 대결구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저 모두가 세도가이고 권력을 향한 탐욕스러운 욕망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특히 흥선은 자신의 뜻을 숨기고 양반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녔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격을 드러낸다. 망한 왕족으로 한량 같이 그려지지만 무서운 뜻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박재상은 이것을 알아봤기에 흥선에게도 명당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김좌근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기도 한다. 그가 천하명당에 탐을 내기 전까지 거대 세도가를 무너뜨리는 일로 힘을 합치지만 그 역시 욕망으로 가득 찬 세도가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세도가가 죽어도 다른 세도가는 나오기 마련'이다. 이는 왕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김병기(김성균)의 모습에서도 잘 그려진다. 김좌근이 없어져도 다른 김좌근이 나타나 또 땅을 찾아 자신들의 가문이 영명하길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흥선도 마찬가지다. 왕가의 부활이라는 대의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아들과 손자를 왕좌에 앉히는 것에 더 혈안이 돼 있다. 절을 몽땅 태워버리면서까지 그 땅의 기운을 받으려는 야욕가인 것이다.



현대의 부동산이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땅값이 오를 땅을 미리 선점해 자자손손 물려주며 부와 권력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 학군이 좋고 교통이 좋은 지역의 땅이나 아파트를 미리 선점하거나 그런 쪽이 아파트를 여러 채를 사들이는 이들이 결국 원하는 것은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환경을 통해 좋은 교육을 받아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명당이란 애초에 땅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같은 말이 아니었을까? 값이 오를 땅을 미리 차지해 부자가 되거나 강남과 같은 특정 지역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김좌근이나 김병기 혹은 흥선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영화적인 의미를 떠나 <명당>에서 아쉬운 부분은 배우들이다. 소위 말하는 스크린을 커버할 아우라를 지닌 배우들이 많지 않았다. 조승우, 백윤식, 김성균 정도는 영화적인 호흡이나 액션을 보였지만 지성, 문채원, 유재명, 이원근 등은 TV 브라운관에 더 어울리는 마스크와 아우라를 지녔다. 연기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카테고리가 좀 다르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헌종을 연기한 이원근은 유약한 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발성부터 눈빛, 연기 모두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자막이 필요할 정도로 전달력도 약했다.



그럼에도 <명당>은 추석 시즌 가족 영화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신이라는 소재는 결과론적인 얘기이기에 모두의 흥미를 끈다. 그게 땅의 기운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결과를 알기 때문에 결과를 통해 과정을 끼워 맞출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웰메이드 사극은 아니지만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는 나름 만족스럽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잖은가.


각자 개인의 명당이 있을까?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은 아니더라도 특정한 장소에 대한 행운이 느껴지거나 좋은 기분이 느껴지는 곳은 있을 것이다. 풍수학적으로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 그 장소에 대한 좋은 기억이나 추억 때문이리라. 각자의 역사 속에서 결과론적으로 좋은 의미를 남겼던 어떤 곳, 그곳이 다름 아닌 우리만의 명당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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