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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Jan 04. 2019

<레토>, 음악이 화면을 채운다

브런치 무비패스 #26


<레토>, 음악이 화면을 채운다


1981년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새로운 음악을 하려고 하는 빅토르 최(유태오)는 당대 최고 록스타인 마이크(로만 빌리크)를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록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에 빅토르 최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마이크와 그의 뮤즈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센바움)를 통해 음악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도 경험한다.


이야기는 빅토르 최의 음악 인생 한 부분을 담는다. 일대기 형식보다는 음악 활동에 초점을 맞춰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음악을 했는지를 그린다. 사실 우리 관객에게 빅토르 최의 삶과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그의 이름이 유명하고 그 음악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정작 어떤 음악이 어떻게 유명했고 그게 왜 대단했는지에 대해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레토>가 그런 부분을 파고드는 건 아니다. 인물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시대와 상황, 음악 자체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레토>의 표현 방식은 좀 다르다. 빅토르 최의 연대기적 구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음악을 막 시작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인물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제목이 <레토>다. '레토'는 '여름'이라는 뜻으로 4계절 전체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뜨거운 한 철을 의미한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음악에 빠지고 사랑을 하고 사람들과 호흡했던 인생의 가장 뜨겁고 빛났던 그 여름의 시간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의 표현 방식은 재미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을 두고 그 위에 음악을 잘 녹였다. 마치 뮤직비디오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으로 음악들이 역할을 한다. 뮤지컬 형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픽이나 상황 등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오히려 짧은 뮤직비디오에 가깝다. 그리고 중간중간 화자 캐릭터가 등장해 상황을 설명하고 인물들의 속내를 말해준다. 화자의 이야기와 노래의 가사가 조화를 이루면서 장면들이 잘 구성된다.



<레토>를 통해서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에게 세계의 팝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1981년 레닌그라드에는 개방과 통제가 갈등했고, 음악에 대한 열망도 달랐다. 로큰롤이 젊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았지만 뉴에이지라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이 등장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다양해졌다. 빅토르 최 역시 록스타라는 이미지보다 다양한 음악을 시도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당시 대중들이 다양한 문화에 노출되며 각자의 취향이 생기는 시점임을 보여준다.



음악의 스타일이 변하는 것처럼 러시아에 다양한 문화가 드리우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변해 간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파격적인 시도에 대한 도전,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 익숙한 것을 거부하는 움직임 등이 당시의 문화를 이끌었으며 그것들은 영화 속 음악에 잘 섞여 이야기를 만든다. 문화가 새롭게 태동하던 시기, 빅토르 최는 그 한복판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대중들을 이끌며 전설이 되었다.


대중적인 재미라는 측면이라면 <레토>를 추천하긴 힘들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한다면 추천할 만하다. 감독 역시 흑백 화면에 음악을 가득 채워서 보는 것보다 듣는 것에 치중하길 원했다. 사운드 시스템이 좋은 극장이라면 이러한 효과가 더 잘 살지도 모른다.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모든 곳이 익숙하진 않겠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음악이니까.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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