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28
라멘 가게를 운영하던 아빠가 죽은 뒤 마사토(사이토 타쿠미)는 유품 속에서 싱가포르인 어머니의 일기장과 외삼촌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먹었던 바쿠텐의 기억을 떠올리며 외삼촌을 찾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음식 블로거 미키(마쓰다 세이코)의 도움으로 외삼촌을 만나고 편지의 내용도 알게 된 마사토. 외할머니를 통해서는 엄마와 아빠의 과거 이야기도 알게 된다.
음식은 공감대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요소다. 특히 사람의 관계에 있어 '먹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아픈 역사를 가진 두 나라가 음식을 통해 하나가 되고 완전하지는 않아도 용서하고 이해를 한다.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그래서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빠의 요리 라멘과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엄마의 음식 '바쿠테'는 서로의 강점과 상징성을 지니고 하나의 음식으로 만들어진다. 단순히 여러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음식이 아니다. 가족의 완성이자 역사의 용서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희망을 지닌 음식이다. 음식을 하나로 합쳤다고 지난 시간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란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씨앗이 되고 그를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 치고는 여러 가지 요소가 많이 섞여 있다. 음식에만 집중하기보다 상징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활용한다. 라멘의 맛 자체, 바쿠테의 맛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들이 대표하는 것들, 가족의 해체와 결합, 이해와 화합에 대한 양념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무심한 듯 툭 내어놓는 한 그릇의 퓨전 음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아픔의 역사는 음식의 결합으로 쉽게 봉인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가족이라는 관계의 바탕이 있어 가능하지만 일본과 싱가포르의 문제로만 따지면 시선이 달라진다. 하나의 음식이 완성되듯 쉽게 결합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노력이나 시도는 높게 살 수 있지만 사실 그 이후에도 갈등은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음식을 먹는 것으로 지난 시간들이 잊힐 수 있을까? 가족이니까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런 쉬운 해결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도 싶다.
에릭 쿠 감독의 작품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굉장한 팬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색깔을 계속 유지하는 감독으로서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특히 최근엔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아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기도 한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