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29
모두의 존경을 받는 예비 도지사 구명회(한석규)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시체유기였다. 구명회는 이를 덮으려고 하지만 사고 피해자 유중식(설경구)은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밝히려고 애쓴다.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 현장에 며느리 련화(천우희)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구명회와 유중식은 련화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하지만 련화는 사고 당일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과연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화 <우상>은 주제는 명확하다. 영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IDOL, 사전적 의미로 신화적인 꼭두각시를 말한다. 어떠한 대상을 우상화하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행동이 수반된다. 영화는 이 점을 비판한다. "사람들은 통증이 없으면 아픈지 모르고 계속 살아간다"는 대사와 화상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구명회의 마지막 연설 장면(어떤 언어가 아니다 그저 괴성에 가깝다)은 영화의 주제를 가장 직접적대로 보여준다. 우상화에 찌들어도 그것이 고통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것 자체를 모르고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가 우상화되었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선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는 우상화로 아프지만 통증이 없기 때문에 아픈지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명확한 주제 의식을 뒤로하고 꽤나 산만한 전개를 보인다. 영화는 총 3가지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는데 구명회의 아들 사건 은폐, 유중식의 진범 밝히기, 련화의 한국에서 살아남기가 그것이다. 영화가 잘 풀렸다면 이 3가지 이야기가 곁가지를 치더라도 하나의 중심 된 이야기나 사건에서 유기적으로 영향을 줬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이야기는 따로 놀았고 관객은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됐다는 거야?"를 연발해야 했다. 짐작해 보자면, 편집에서 많은 이야기가 잘려나갔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영화는 144분이라는 긴 런닝타임을 갖게 됐다. 줄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이야기가 무너진 건 아닌가 싶다.
구명회의 이야기는 꽤나 명확하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예비 도지사인 그는 아들의 교통사고로 곤란을 겪는다. 모든 사실을 밝히고 벌을 받겠다고 하지만 사실 교통사고 사망 사건이 아니라 교통사고 이후 시체를 유기했다는 게 쟁점이었다. 그는 그것을 감추고 관련된 증거나 목격자들을 추적하며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는 걸 막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돈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가족의 일이지만 비즈니스의 관점이 명확하고 자신의 성공과 출세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정의감을 보여준다. 극 중 아들, 부인,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그가 가족보다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반응만을 중시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들에게는 거짓된 진실을, 부인에겐 자신의 성공에 대한 방해물 제거의 역할을, 부모는 돈으로 거래하며 역할을 맡긴다.
반대로 유중식은 아들, 즉 가족의 일에 모든 것을 건다. 아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에 아들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알고 있는(하지만 그것조차 명확하지 않은) 련화의 안전에 집착한다. 아들의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구명회와 엮이지만 범죄 전과가 있는 소시민인 그가 상대하기에 구명회는 큰 산이었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던 중 련화와 관련된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의 죽음보다는 며느리 련화를 살리는 쪽으로 자신의 인생을 투자한다. 가족이나 핏줄에 모든 것을 걸었다. 대외적인 존재감이 없는 그에게는 핏줄을 지키는 것이 소명이자 인생의 목표(억지로 끼워 맞추면 우상화)일 수밖에 없다.
련화는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중국에서 사람을 죽이고 한국으로 온 련화는 자신과 언니를 죽이려고 쫓아온 남자를 피해 한국에 정착하려 하지만 첫 번째 남자는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아 도망자 신세가 되고 유중식의 장애 아들과 결혼하지만 사건에 휘말린다. 자신을 쫓아온 첫 번째 남자를 피해 도망간 사이 유중식의 아들이 구명회 아들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유중식의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불법 외국인 노동자로 추방의 위기도 함께 겪어야 한다. 그런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유중식 덕분에 한국에 남게 되지만 자신을 잡으러 한국까지 쫓아온 남자를 죽이고 유중식의 아들을 죽이고 자신에게 사람을 붙인 구명회까지 죽인다. 련화에게 우상은 한국에서의 생존, 남을 죽여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이 3가지 이야기는 각자 따로인 것 같지만 또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구명회 아들의 교통사고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영화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러 해석으로 명확하지 않고 관련된 인물들도 중구난방이다. 뭔가 키를 쥐고 있을 것 같은 인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어 없어지거나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해 방향을 틀어버리기도 한다. 구명화외 유중식이 언뜻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풀어가는 듯 보인다면 여기에 련화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꼬이기만 한다. 교통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지만 의문을 남기며 겉돌기만 한다. 구명회는 왜 련화를 죽이지 않았는지, 유중식은 왜 이순신의 머리를 날려 버렸는지, 련화는 왜 구명회를 죽이기까지 했어야 했는지. 각자의 해석은 있지만 명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화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는 대사전달력이다. 오디오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련화의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변 말투(?)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고증을 너무 정확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어도 안 들리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영화에서 련화는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데 대사 전달이 잘 되지 않으니 "방금 뭐라고 했지?"하는 혼잣말을 계속하게 된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잘 따라가기가 힘들었고 납득이 잘 되지 않는 상황도 많았다.
<우상>은 괴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배우를 데려다 놓고 이야기의 맛을 보여주지 못하니 안타깝다. 우리가 갖고 있는 허상에 대해 비판하고 각자의 우상에 대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양심의 가책 하나 없이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의도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게 무릎을 탁 칠 정도의 맛깔스러움이 없다는 게 문제다. 영화 중간중간 비어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144분은 너무 길다. 이건 열린 결말이 아니라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결국 주제는 이거였어"라는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는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
이수진 감독의 전작 <한공주>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멍했다. 하지만 <우상>을 보고 나니 고개가 갸웃해진다. 사실 <한공주>는 소재 자체가 너무 강렬해서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지만 <우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