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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Apr 02. 2019

<바이스>, 세상을 움직이는 탐욕스러운 힘

브런치 무비패스 #30


<바이스>, 세상을 움직이는 탐욕스러운 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런 그가 똑똑한 아내(에이미 아담스)에 의해 정치에 뛰어들면서 현실의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의 삶뿐 아니라 세계가 변한다. 백악관 수석에서 석유회사의 CEO, 펜타곤 수장을 거쳐 부통령까지. 그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누구보다 큰 권력을 휘둘렀고 자신과 주변인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등 세계의 흐름을 좌지우지했다.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부통령 딕 체니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시작하기 전에 <바이스>의 논조가 진보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하지만 영화에도 나온 것처럼 그것들은 팩트다. 세계를 말아먹은(?) 여러 사건들이 소위 보수라는 공화당 사람들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해 자행됐다는 것을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바이스(VICE)>는 'Vice President'라는 의미의 미국 부통령을 뜻하기도 하지만 단어 자체로는 '부도덕', '악', '범죄' 등을 뜻하기도 한다. 결국 딕 체니 부통령에 관한 이야기면서 세상을 악으로 물들인 미국 공화당의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매우 영화적인 시선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지닌 <바이스>는 걸프전과 사담 후세인, IS 창설, 세계 테러의 배후, 석유 전쟁과 정경유착의 민낯, 허수아비 대통령 뒤에 숨은 실세와 안보와 국익 핑계를 대는 저급한 정치와 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치적인 성향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당(보수)이 잘못됐고 민주당(진보)이 옳다는 시선이 아니라 권력을 좇는 이들의 욕심과 그로 인해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고 누가 돈을 벌고 또 그 권력과 부가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중동의 석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걸프전을 일으키고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 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와 후세인을 세계의 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석유 회사들은 떼돈을 벌지만 의도하지 않게 ISIS의 창설에도 관여하게 된다. 그들의 역사관과 정치관, 국익은 결국 자신들과 관련된 기업에게 떼돈을 벌 기회를 준다. 그 과정은 국민들의 의사나 이익과는 큰 관련이 없다. 그저 나라 경제를 위한다는, 국제경찰로서의 위력을 과시하는, 안보의 최전선에 있다는 '핑계'만 가득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딕 체니의 인터뷰 장면이다. 기자가 묻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 무기를 이유로 많은 미국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딕 체니는 당당하게 말한다. "몇 천 명의 희생 덕분에 더 많은 자국민들이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너무 맹목적인 관점이지만 스스로는 강한 신뢰가 있다. 그 신뢰가 국민들이 아닌 자신의 부, 보수정권의 권력, 그와 관련된 기업들이 돈을 버는 데에만 집중됐다는 것이 문제일 거다. 그리고 만약 걸프전 자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 몇 천 명의 군인은 목숨을 잃을 일도 없었을 거다.



영화적으로는 재미있는 구성이 나온다. 영화 중간에 갑작스레 영화가 마무리되며 자막까지 올라가는 장면이다. 딕 체니가 정계를 떠나 석유 관련 사기업의 CEO가 된 상황이었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렇게 딕 체니가 정치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안전하고 평화로웠을 거라는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이 이 모든 것을 깨버린다. 아들 부시의 러닝메이트 제안 전화다. 그리고 딕 체니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대통령보다 더 강한 권한을 가진 부통령이 돼 시대를 호령한다. 딕 체니의 커리어가 사기업의 CEO로 그렇게 끝나 버려다면, 아마도 영화는 욕을 먹었겠지만 세상은 욕을 먹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정치를 하는 사람 모두가 자신의 권력욕과 이익에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중 덜 더러운 정치인이 정치를 해야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는 정치인들의 사리사욕과 권력욕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현대사를 바꿔놓을 만큼 강한 임팩트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상관없을 것이다. 자신의 힘이 세지고 자신의 부가 늘고 명예가 높아지는 것을 미국의 힘과 미국의 부와 미국의 명예와 동일시하고 있을 테니까. 이 작은 나라에서도 권력을 위해 갖은 술수를 다 쓰는데 더 큰 힘을 갖게 되는 미국의 정치인들은 얼마나 더 했겠는가 싶다.



영화적으로는 <빅쇼트> 사단의 영화답게 신랄한 현실 비판이 주를 이룬다. 크리스찬 베일은 젊은 딕 체니부터 늙은 딕 체니까지 외형을 완전히 바꿔가며 캐릭터의 특징을 잘 살리고 스티브 카렐과 에이미 아담스 역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인다. 현대사에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도 재미를 더하고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입장과 상황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연출이 약간 늘어지는 느낌도 있지만 실제 이야기 자체가 임팩트가 있으니 크게 의식될 정도는 아니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2시간 넘게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다.


보수당이 잘못됐고 진보당이 옳다는 시각은 잘못됐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인들이 정치'꾼'으로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잘 지켜봐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고 그 정치에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치는 결국 역사를 만들고 우리 생활을 결정한다. "정치에 관심 없어"는 스웩이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우리의 삶이, 우리의 목숨이 권력을 가진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니까.


(사진 제공 :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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