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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르 Jun 03. 2019

연극 <어나더 컨트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작은 노력

브런치 무비패스 #31


연극 <어나더 컨트리>,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작은 노력들


1930년대 영국 상류층 자제들만 모인 명문 고등학교. 이곳에선 철저한 계급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전통이라 믿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가이 베넷(이동하)은 숨 막히는 체제 안에서 자신만의 살 길을 찾고, 사회주의자인 토미 저드(이충주)는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들에게 섞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차기 학생회 자리를 놓고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고 가이와 토미는 각자의 가치관을 꺾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가이의 비밀도 함께 밝혀진다. 이들은 명예와 규율을 강조하는 학교 안에서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 세상의 중심인 곳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오는 말을 진리라 믿고 그들이 신봉하는 가치를 명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전통적인 가치관은 집단 지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엄격한 규율과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신봉하는 태도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영국 최고의 기숙학교는 그런 세상의 축소판이다. 누군가는 규율을 앞세워 시스템을 강조하고, 누군가는 계급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또 누군가는 어떠한 의식도 없이 그 안에서 순응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어떤 억압된 곳에서든 항상 자유로운 영혼과 평등주의자는 있는 법이니까.


가이 베넷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묘사된다.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시스템 안에 있으면서도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강요받고 억압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숨 막히는 시스템 속에서도 숨 쉴 방법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학생회를 통해 성공의 스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다. 자유로움으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기보다 체제 안에서 순응하고 그 안에서 약간의 틈을 만들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토미 저드는 가이 베넷보다는 더 급진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상류층 자제가 모인 공립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지만 밤마다 몰래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읽으며 사회주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적인 관점으로 당시 영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보고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역시 학생회가 주도하는 기숙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다. 그가 속한 기숙사라는 세상과 맞서고 있지만 오랜 시간 갖춰진 시스템과 전통이라는 명분 아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히려 폭력적인 성향의 원칙주의자인 파울러의 집권을 막기 위해 계급 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일 뿐이다.



가이와 토미 외에도 기숙학교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계급 사회의 주도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책임회피적인 입장만 고수하는 인물, 학생회라는 계급주의적인 시스템을 이용해 사회의 요직으로 나가려는 인물, 기숙학교의 규칙과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 보다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곳을 만들려는 인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기숙학교의 룰을 따르고 순종하고 있는 인물,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 등 모두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대표한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 가이와 토미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속한 사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더 나아가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과 가치관이 존재한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타파하기를 원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해 자신의 터전을 공고히 하려는 세력이 있다. 문제는 그 모든 세력이 같은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스스로 개혁하고 혁명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순응하며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한다는 중도주의적 입장은 사실 현실성이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회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안위와 이익 때문에 모른 척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항하고 반대하고 바꾸고 뒤집어엎는 것은 그 사회를 리셋하는 일이니 쉽지 않은 결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이는 새로운 나라를 택한다. 나라라기보다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세상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를 뿌리치는 것. 그것으로 인해 그가 잃어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지만 그는 대대적인 혁명도, 계급사회의 타파도, 권력의 순응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선택을 한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에 충분히 적응한 사람들이다. 이 사회 안에 소속된 사람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작은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아야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세상이란 변화를 고수하려는 쪽과 변화를 주려는 쪽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곳이니까.


영화가 아닌 연극의 리뷰를 쓰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무대나 배우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배우마다 출연 날짜가 다르고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날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우연에 기대는 것일 수도 있으니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 그날 열연을 펼친 모두에게, 또 내가 보지 않는 날 열연을 펼쳤던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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