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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2. 2023

안녕, 나의 친정집 나의 아지트.

친구가 카페를 폐업했다.


친구가 엄마가 됐다. 

임신 하기 전에 술마셔야 한다면서 둘이 수원역에서 곱창에 소맥을 말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 날 임신했다며 소식을 전했다. 기쁜마음을 담아 축하와 축복을 가득 보냈다.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친구가 슬슬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치그치, 아무래도 임신한 채로 일하면 힘들긴 하지.

친구의 몸 상태가 걱정되면서도 슥 둘러본 이 공간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했다.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친정집'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만큼, 친구의 카페는 내게 친정집 같았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들, 넓직한 공간,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난 곳.

달큰한 버터냄새와 고소한 커피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니고, 카운터 안쪽 주방에선 작은손으로 마법사처럼 디저트를 구워내는 친구가 있었다. 


커다란 눈을 끔뻑 거리며 "왔냐" 한마디 , 바쁠때면 손을 잠깐 들어주는 거로 반겨주는 익숙한 인사.


한가해질 타이밍을 노리며 포장된 빵과 디저트를 구경하고, 매번 같은 메뉴를 고를거면서도 괜히 메뉴판과 쇼케이스에 힐끗 힐끗 시선을 던진다. 익숙하게 주문을 하면 트레이 위에 언제나 곁들임이 더해진 메뉴가 나왔다.


첫 직장에 취업한 후 처음 보냈던 여름휴가. 돈도 갈데도 없어서 3일 내내 친구 카페만 갔던 날 여름.

이별 후 보낸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 케익을 주문하고 초를 꽂아 작은 소원을 빌었던 겨울.

울컥이는 감정을 삼키던 어느 날 ' 얼그레이 자몽 먹으러와' 한마디를 던지며 내준 케익을 입에 밀어넣으며 눈물도 케익도 삼켰던 가을.

봄볕이 따사해서 한가했던 오후반차, 강남에서 전철로 버스로 걸어서 '나왔어!' 라고 발랄하게 인사하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던 봄.


20대의 나의 사계엔 언제나 친구의 카페가 있었다.


취준 고민, 사는 얘기, 회사 이야기, 인간관계, 연애, 사랑, 우정, 인생, 꿈, 희망 , 진로, 가족관계, 돈 등등 

너무나 내밀해서 함부로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주방 한 켠에서, 테이블 위에 토도독 떨어졌다.


많은 이야기로 수놓았던 시간들이 가득해서일까, 친구의 폐업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 아쉽다가 조금 아팠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언제나 부재와 상실, 이별은 아픈거구나.

그 날 다시금 '상실과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카페는 다른 사람에게 인수됐고 종종 발걸음이 닿던 그 곳에 난 더이상 가지 않는다.

마지막이 아쉬워 몇장의 사진을 남겨두었다.


공간은 사라졌지만 친구는 그대로고 그 장소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와 감정적인 교류가 분명 둘 사이 한 켠에 남아있을테니 아쉽지만 진짜 보내줘야겠다.


안녕, 카페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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