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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9. 2023

I Could die in this moment

데스노트 홍광호 배우를 보러 13회 차를 돌던 날들


나는 잡덕이다. 얕고 넓은 영역을 가볍게 좋아한다. 

뭔가를 깊게 좋아해 본 적이 딱히 없다. 

깊게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진한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뜻인데 아직 그런 영역을 찾지 못한 걸까.

뭐든지 우연으로 다가오고 우연이 호기심으로 촉발되어 총총 거리는 걸음으로 이 얕은 애정을 행동으로 옮기던 날들이 많았다.


뮤지컬은 이 얕은 애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내 작은 덕질 중 하나다.

우연히 데스노트 뮤지컬을 알게 됐고, 친구의 강한 추천 + 당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를 통해 김성철 배우에게 단단히 치임 + 우연히 알게 된 홍광호 배우의 데스노트 OST 넘버 영상 의 조합으로 데스노트를 보러 갔다. 

홍광호-김성철 배우 첫 조합 관람 후 나는 '진짜 미쳤다. 쩔었다.'를 내뱉으며

재빨리 티켓 예매 어플에 들어가 다른 조합의 티켓을 폭풍 예매했다. 


작년 데스노트 뮤지컬의 주연배우 캐스트 조합을 1 회차씩 돌고 마지막으로 홍광호-김성철 배우 페어로 만족스럽게 마무리했었다. 예술의 전당 앙코르 공연에서 3열을 잡고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홍광호 배우를 보며 벅찼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다시 돌아온다니요!


이미 봤던 극이니 홍광호-김성철 배우 조합으로 한 번 볼까~ 싶던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그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라이토'일지 모른다고 했다.


가볍게 좋아하던 마음에 둥실둥실 파문이 퍼져나갔다.


'마지막'. 


그의 작품을 본 거라고는 물랑루즈와 데스노트가 전부면서

갑자기 마음이 초조해졌다. 아마 뮤지컬은 '이 순간' 오로지 '단 한번'만 존재한다는 특수성이 날 그리 만든 게 아닐까 이제야 생각한다.

열리는 모든 티켓팅에 참전하고, 새벽까지 눈을 비비며 취케팅에 참여했다.

한 달에 한 번 보러 가던 뮤지컬을 4월부터 6월 마지막 공연 전까지 13번을 봤다.

고은성-김성철 1번, 홍광호-김준수 3번, 홍광호-김성철 9번.

나중엔 공연장에 도착해서야 캐스트 보드를 보고 조연 캐스트가 누군지 알거나, 

무대를 보면서 렘-류크-미사 배우를 알아차렸다.


2023년 6월 15일 19:30 홍광호-김준수 배우 공연을 마지막으로

장대했던 나의 데스노트 회전문은 서울 공연이 끝나서야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스스로도 이 마음의 원천이 궁금했다.

모든 공연에 집중했던 것도 아니다. 

어떤 날엔 두 손을 모아 한껏 시간에 빠져들었고

또 어떤 날엔 등받이에 기대어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감상했다.

중간중간 내가 아는 디테일이 나올 때면 혼자 '크으'하고 감탄사를 삼켰고

엊그제와 다른 표현을 알아차릴 때면 '오늘은 이런 식으로 표현했네!' 

혼자 비교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뭐길래, 나의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기꺼이 한 극에 바칠 수 있었을까?


인생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러 뮤지컬을 보러 다닐 만큼의 애정이 깊은 것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그냥'이라는 대답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나를 숨 쉬게 했다.



당시 나는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도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며 살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지 않으면 실패한 것 같은 느낌, 나는 분명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손에 성과가 남는 것 같지 않는 기분, 스스로에게 실망하던 시간들, 과거를 반추하며 '그랬더라면' 가정법을 무수히 세우던 날들까지.

지치고 낡은 마음엔 현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 마음에 뮤지컬은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야 함을 알려줬다.

지나간 넘버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만 아는 그 디테일, 내가 기다리는 표현들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기다렸던 시간은 이미 지나고 없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감각, 이 순간에 몰입하고 있다는 감정.

순간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배우를 바라보며 느끼는 반성과 황홀

그 모순적인 감정을 나는 사랑했다. 


그건 아마, 반성으로만 가득했던 날에 결핍된 감각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내가 좋아하는 넘버를 기대 이상으로 표현했을 때의 짜릿함,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붙들고 싶을 만큼의 황홀을 느끼며 나는 비로소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이 이토록 짜릿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기회가 되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마음에 품은 채 

나의 봄을 가득 채운 , 찰나 같던 현재의 순간에 기꺼이 뛰어들게 해 준

홍광호 배우에게 작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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