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17. 2024

인간은 정말 복합적인 존재야

새치기를 하시더니 자리를 내어주시면 저는...

오랜만에 서울로 향하던 날이었다.

전철을 기다리며 '어디가 출구랑 가까울까' 검색 후 그에 맞는 플랫폼 앞에 서있었다. 비주류 경제학을 보며 전철을 기다리는 데


갑자기


스윽

할아버지 한 분이 내 대각선 쪽에 서계셨다.

분명 내가 맨 앞인데 갑자기 두 번째가 됐다.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대가 전혀 아니었고 다소 한산했던 낮시간이었다. 강남 방면이 아닌 신도림 방면 2호선이라 조금 더 한산했는데 그 많고 많은 플랫폼 중에 하필 내 앞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지.


설마 이렇게 대놓고 새치기를 한다고?


어리둥절했다.

문이 열리면 몸으로 막아 내가 먼저 타야 하나?

온갖 생각을 하던 와중 전철이 도착했다.

우르르 사람들이 내리자마자 새치기하신 할아버지가

슬쩍 내 앞으로 오시더니 나를 앞지르셨다.

서울은 눈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라더니!

나를 앞지른 할아버지는 자리를 찾으시는 듯했지만

언제나 사람이 많은 2호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리는 출구 문에 기대 서계셨고 나는 혼자 쉬익쉬익대며

앉아있는 사람들 앞자리를 잡았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으려는 데

대뜸 뒤에 앉아있는 남자분이 일어나더니 나를 앞지른 할아버지를 불렀다. 여기 앉으시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 감사를 표하시더니

그가 양보한 자리로 가셨다. 다리를 절뚝이시면서


하, 불편하다. 불편해.

아까 새치기에 대한 분노는 어디 가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팍 치고 들어갔던 나에 대한

수치심, 자괴감, 부끄러움이 온몸을 덮쳤다.

그의 새치기가 용서될 건 아니지만

친절을 택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하던

자만 넘치던 스스로의 오만에 큰 부끄러움이 남았다.


서서 책을 읽으며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며 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툭 쳤다.

손으로 자리를 가리키더니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가셨다.

아까 날 앞질렀던 할아버지였다.


어안이 벙벙해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한 채

어버버 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내렸고 나는 여전히 혼란했다.



그날 바로 그 자리에서 썼던 마음

인간은 대체 뭘까.


새치기를 하고 내릴 때 무심하게 자리를 비켜주고 가는 것.

새치기를 당해 쉬익 쉬익 대다가도 그의 불편한 모습에

쉬익 쉬익 댔던 느꼈던 부끄러움과 낯뜨거움.


이래서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라는 거구나.


우리는 쉽게 타인을 단정 짓고 판단한다.

스스로는 복합적이고 함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이상하게 타인은 쉽게 단정 짓고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나는 3D로 생각하며 타인은 2D로 보는 삶. 차원의 격차에서 비롯된 이해의 부재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낳았던가.


인간은 복합적이고 누구나 다 이상하다.

함부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판단하려 하지 말자.

자주 생각했지만 실제 마주한 인간의 복합성은 꽤나 오묘했다.


누군가의 말, 행동, 태도 등이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억지로 이해하기보다 그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계속말한다.


인간은 복합적이고 우린 모두 다 이상한 존재야.

그러니, 억지로 이해하려 판단하려 들지 말고

'음 그렇군.' 온점으로 끝내자.

작가의 이전글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