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이번 여름휴가를 어떻게 할거냐며 톡을 보내왔다. 나는 코로나시국에 휴가는 무슨 휴가냐며 이번엔 그냥 집에서 에어컨이나 쐬며 그동안 못읽은 책이나 실컷 읽고 싶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여름휴가를 싫어한다. 더위와 사람에 치이는 여름휴가는 정말이지 No Thank you!!
내 속을 꿰뚫어 보는 신랑은 우리 가족만 오븟하게 보낼 수 있는 타운하우스형 콘도를 이미 예약했다고 했다. '거긴 물놀이도 못하고, 우리끼리만 바베큐해먹을 수 있고, 베란다가 엄청 넓어서 애들도 놀기 좋대. 그리고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도 없을거니까 코로나 걱정은 안해도 될거같애. 크크'
엥? 근처에 아무것도 없으면 콘도만 덜렁 있다는거야? 뭐야, 그럼 돈 써가며 뭐하러 가? 그냥 집에 있지.
나는 이 휴가 반댈세!!
퇴근후에 신랑과 휴가에 대해 다시 의논을 했다. 신랑은 코로나시국이라 자기도 고민은 됐지만, 집에만 있는 아이들이 가여워서 그래도 자연속에 있는 그 콘도에 가면 산책도 하고 잠깐이나마 뛰어놀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예약을 한 것이라고 했다. 콘도 근처에는 이승복기념관도 있으니 아이들 데리고 기념관에 들러 반공의식도 심어주면 좋지 않겠어? 라며 두손을 번쩍 들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낄낄댔다.
나는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 꼭 거길 가야겠냐며 물었다. '거기가 왜? 아이들한테 올바른 우리 역사를 알려줘야지' '그게 왜 올바른 역사야?' '그럼 뒤틀린 역사냐?' '그건 아니지만..그리구, 이승복이 그때 9살이었다는데 정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렇게 외쳤을까? 그거 조작이라는 말도 있던데, 아무리 반공의식이 투철해도 어린애일 뿐인데, 아무말도 못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수도 있잖아. 어린애니까.'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했을 뿐인데 신랑은 반공의식이 부족하다느니, 사상이 없다느니, 역사의식이 그렇게 부족해서 세상보는 눈을 더 키워야겠다는둥 나를 비난했고 비난받은 나는 그래, 나 사상없다,사상이 없는게 왜? 잘못됐어? 라며 반박했다. 신랑은 사상이 없으니 북한에 가서 살아도 되겠네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비아냥 거렸고 나는 그 비아냥이 참을 수 없어 씩씩대며 신랑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이 양아치야!"
신랑은 이 한마디에 큰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떨구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신랑에게 비난받은것이 너무 분해서 신랑의 기분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긴 침묵을 깨고 고개를 든 신랑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양아치야? 응? 내가 너랑 십수년을 함께 하면서 그렇게 양아치 같았냐? 양아치랑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나는 도통 신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누가 먼저 비아냥거렸는데? 양아치 한마디가 우리가 함께 한 십수년타령까지 나올거리야? 그렇다고 신랑에게 이 강아지야! 라고 할수는 없잖은가. 예능에서도 종종 나오는 이 말이 그렇게 심한 욕이던가? 그제서야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포털사이트에서 '양아치' 의 뜻을 찾아보니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있었다. 어, 양아치가 이런뜻이었나.
뜻을 알고 나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나는 내가 먼저 사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오히려 내가 맞는말 했지뭐, 아니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다고 안했을수도 있지 그 한마디 한게 그렇게 잘못한거야?라며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해가 떨어질때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신랑역시 전화한통 없었다.
퇴근후에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둘째를 씻기고 야구중계를 보다보니 나의 분노지수도 어느새 떨어져 있었다. 슬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볼까 하던참에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나야~양아치!"
"뭐?하하하하하"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한참을 웃었고,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사과없이 화해를 했다.
우리는 어떤 싸움에서는 정식으로 사과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또 어떤싸움은 이처럼 유야무야 넘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