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재혼을 했다. 재혼한 여자분은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무엇보다 지인의 딸아이를 무척이나 예뻐했다. 그 여자분은 우리를 만날때마다 자기는 딸낳아서 친구처럼 지내는게 소망이라고 했는데 이미 딸이 있으니 벌써 그 소망을 반은 이룬거 아니겠냐며 잘 키울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여자분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아이도 안 낳아본 아가씨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저렇게 선뜻 받아들이다니. 나는 그 옛날 우리의 새엄마가 생각이 났다.
새엄마는 막 서울에 상경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25살에 우리 아빠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그 당시 아빠는 친엄마와 이혼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는데, 이혼서류의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순진했던 시골아가씨를 아빠가 꼬셨던 것이다. 총각이라고 속인채.
둘은 사이가 점점 깊어졌고, 같이 살게 되었다. 이혼이 마무리되자 딸아이 셋을 총각인(?) 아빠가 키울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하지만 아빠도 양심은 있었는지 아니면 새엄마가 착해서 믿는 구석이 있었던건지, 같이 살기 시작한 후에 양심고백을 시작했다. 사실은 결혼을 했었고 이혼했고 딸 하나가 있다고. 첫 고백에서 새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기회봐서 아이를 데려와 같이 살자고까지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빠의 양심고백은 새엄마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총각인줄 알았던 사람이 딸 셋 가진 이혼남이었다니!
새엄마는 그길로 짐을 싸서 친정으로 내려갔다. 두번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고.
뒤따라온 아빠가 새엄마에게 계속해서 용서를 구하고 또 구했지만 새엄마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는데 그 마음을 돌려세운건 어이없게도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는 용한 점쟁이에게 점을 보고 오셔서는 아빠와 새엄마가 천생연분이고 둘이 살면 너무너무 잘 산다 했다고 하시며 아빠를 사위로 받아주시고 새엄마를 아빠따라 서울로 올려보내셨다. 니 배로 안낳았지만 그래도 니 배로 낳았다 생각하고 그 애들도 잘해주라는 말씀과 함께.
그렇게 우리는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새엄마는 내가 동화책에서나 봤던 그런 나쁜 계모가 아니었다. 얼굴도 예뻤고 아침마다 '밥먹어야지~'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도, 아침마다 밥상에 족히 10가지는 되보이는 반찬이 올라오는 것도, 나를 보면 항상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도 나는 이모든 것이 꿈만 같아 나는 이런 새엄마라면 진짜 우리엄마여도 괜찮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엄마가 들어온뒤로 어찌된 일인지 동생들이 크고 작은 사고-도둑질을 한다든지 집을 나간다든지-를 쳐대서 아이를 낳아본적도, 키워본적도 없는 새엄마는 동생들을 어찌 훈육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한채 발만 동동 거리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 젊고 잘생기고 놀기 좋아했던 아빠는 툭하면 바람을 폈고 툭하면 외박을 해서 집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결국 새엄마는 집을 나갔다.
새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빠도 따라서 집을 나갔고 텅빈 집안에는 우리 세자매만 남았다. 나는 빨래도 하고 밥도 지으면서 새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며칠 후 우리집에 들어온 사람은 새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게 느그 아부지 다 죽게 생겼다며 느그는 아부지 죽으면 다 고아원에 가야 한다고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놨다. 그말씀을 하는 할머니 눈가가 촉촉한게 예삿일이 아님을 어린 눈치로도 알수 있었다.
몇달이 흘렀을까.
새엄마가 다시 집으로 왔다. 그런데 차림새가 어디 멀리라도 가는 사람처럼 말쑥했다.
대문앞에서 멍하니 새엄마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힘없는 미소를 지어주며 머리를 한번 쓰윽 쓰다듬어 주더니 곧장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새엄마의 울음소리였다. 나는 할머니가 전에 하셨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이 울음소리가 뜻하는 바는 곧 우리의 고아원행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나보다. 어떡하지 우리 이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내가 고아원행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이 새엄마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대문앞으로 나왔다. 거기서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왜 울고 있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고개만 저으며 울고만 있었다. 새엄마는 이제 다 괜찮다고 울지말라고 내 눈물을 두손으로 연신 닦아주며 말씀하셨다. "또 보자 아가, 엄마 갈께"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새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가 새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러 따라 나갔는데 어디있는지 행방이 묘연했다고 한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던 중에 아빠는 급성 간염증상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당시 식구들중 돈버는 사람은 우리아빠뿐인데다 딱히 모아둔 돈도 없어 병원비 내기가 여의치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해서 친엄마에게까지 연락해서 돈을 구해보려 했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내 알바 아니니 죽던말던 알아서 해라' 였다고 한다. 모두가 실의에 빠져 정말로 아빠가 죽는구나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새엄마가 어디서 그 소식을 들었는지 돈을 구해와 아빠를 살려냈다고 한다. 이 일로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새엄마에게 고마워 하셨고 아빠는 새엄마가 자기목숨 구해준 평생의 은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새엄마는 다시 아빠에게 발목이 잡혔고 다시한번 잘 살아보겠노라 할머니에게 고하러 왔다 그앞에서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고 간것이었다.
할머니가 새엄마 대신 우리집에 들어오시고 난 후부터 우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와 살았다. 그건 순전히 할머니의 뜻이었다. 대신 새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는 집에 우리가 자주 놀러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때마다 새엄마는 우리가 먹고싶다는 것도 푸짐하게 해주시고, 우리와 친해지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셨다.
내가 중학생때 할머니가 나를 은밀히 불러 앉혀 물으셨다. "아야, 할민 느그 아빠랑 새엄마 사이에서 아들하나 보면 좋겄는디 니는 싫으냐?" 아아..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새엄마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이복동생이라니. 상상만 해도 싫었다. "절대 절대 싫어! 난 엄마도 없는데 그럼 이제 난 아빠도 없어지는 거잖아! 그럼 난 집 나갈거야! 할머니 맘대로 해!"
반항이라곤 해본적도 없는 아이가 집 나간다는 말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싫다고 하니 할머니도 더이상 그얘긴 꺼내지 않으셨다.
나는 그얘길 꺼내신 할머니보다 새엄마가 더 미웠다. 이럴려고 그동안 우리한테 잘해줬나? 그럼뭐해? 어차피 새동생 낳으면 우리는 뒷전이고 그애만 예뻐할텐데. 문득 어렸을적 읽었던 콩쥐팥쥐며 신데렐라, 장화홍련 같은 동화속 계모가 생각났다. 맞아. 암만 잘해줘도 계모는 계모지. 내가 그동안 속았던거야. 바보같이.
배신감에 몇달을 새엄마집에 가지 않았다. 공부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할머니가 아빠랑 엄마 사이에서 아들하나 보고 싶다고 하신건 사실이었다. 내가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셨던 할머니에겐 엄마가 도망가지 않고 아빠랑 계속 살아준다는 건 더할나위 없는 선물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명'하셨고 시어머니의 명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엄마는 두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번째, 애들이 동의할 것.
두번째, 애들아빠가 동의할 것.
그런데 내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이미 첫번째 조건 충족이 안되었으니 내 얘기라면 무조건 들어주셨던 할머니가 더이상 채근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셨던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래도 니 배로 낳은 새끼가 하나정도는 있어야 니가 버티고 사는 것이여, 라고 말씀하셨을때 엄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머니, 꼭 제 배로 낳아야 제 새낀가요, 제가 정주고 그러면 그냥 제 새끼죠"
철없던 시절, 엄마가 '방좀 치워라! 이게 돼지우리니! 사람사는데니!' , '얘들아, 속옷은 니들이 직접 빨아입어 나이가 몇살인데', '스타킹좀 이쁘게 벗어놔! 맨날 이렇게 둘둘 말아놓지 말구!', '에구 이것도 못하면 시집가서 어떡할래!' 이런 잔소리를 하면 동생과 나는 뒤로 속삭이곤 했다. '칫, 역시 새엄마는 새엄마야, 친엄마면 안그랬을텐데. 그치?'
동생과 이런얘기를 한적이 있다고 하면 엄마가 얼마나 서운할까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심하게 반대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엄마곁에 장성한 아들이 떡하니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 역시 엄마에게 미안하다.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때 나는 어렸는데 그 어린애 말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걸 그렇게 신경쓰고 애기를 안낳았어? 무시해버리고 그냥 낳았어도 상관없잖아 엄마인생인데, 여자인생에서 애 한번 낳아보는건 그래도 중요하잖아"
"처음에 니 할머니가 애기 낳는거 어떠냐고 말씀 하실땐 나도 한번 생각은 해봤지~~ 할머니가 그러시드라구 니 아빠랑 평생 살거면 애는 낳아야 한다고...그때 속으로만 혼자 그랬다~ 어머니 저 이남자랑 평생 안 살건데요~ 호호호호"
내가 미안해 하니 농담으로 마무리 짓는 우리 엄마. 벌써 40년 가까이 아빠랑 깨가 쏟아지게 살고 계신다.
진짜 우리엄마가 되버린 새엄마. 올해 환갑이 되셨다.
칠순때도 팔순때도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