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에 서서,
언제나 이 시기엔 계절에 대한 양가감정이 든다. 조금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제 가을이라고 호들갑을 떨다가도, 낮 기온이 올라가면 그래도 아직 여름이라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여름의 끝을 물고 늘어진다. 봄과 여름이 1년의 전반이라면 가을부터는 그 후반부 같아 놓기 싫어서일까. 아빠랑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 쨍한 햇빛 아래서 아직 더운 거 같지? 재차 물었다. 아빠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니 조심하라고 했다.
너울치는 온도차에 쉽게 앓는 것은 기관지뿐만이 아닌가 보다. 아무 저항도 못한 채 데이면 데이는 대로 얼면 어는 대로 당해낼 뿐이다. 혹독한 감정의 환절기는 몇 년 전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감기가 독감이 되어 돌아와버렸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갖고 있는 항체를 믿어보려 해. 꼿꼿이 서서 싸우지 않고 납작 엎드려 그저 이 계절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도 방법이니까.
지나간 여름이 아쉽다고 해서 마냥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황망히 서있지 않아도 된다. 계절은 흘러가기도 하지만 돌아오기도 하는 것. 뜨거웠던 햇살만 남기고 무섭게 쏟아지던 비도 나를 괴롭히던 더위도 이젠 지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