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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29. 2021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정대건, 아이 틴더 유

‘전자 담배도 담배인데, 사이버 친구도 진짜 친구가 아니면 뭐야?’. 즐겨찾는 사진을 해놓고 자주 사용하는 짤 중의 하나로, 귀여운 햄스터가 당찬 멘트를 외치고 있다. 맞벌이 부모님 아래 인터넷 사용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나는 아주 어릴 때 부터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에 빠져들었고 지금도 여지없이 도파민 중독 상태다. 이런 중독의 역사에 따라 소셜미디어로 간편하게 친구 관계를 규정한 이후 서로의 일상을 탐하던 중 왕왕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나 근래의 O2O 우정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채널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행복 전시에 바쁜 인스타그램보다, 농밀한 나의 내면을 꾸밈없이 쏟아내는 블로그에서 만난 친구들이 실제로 만나서 얘기했을 때에도 나를 잘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블로그에는 나의 열등감, 패배감, 알량한 우월감, 조바심… 모든 감정이 들어있었고 인터넷 세계라는 틀은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좋은 방패막이 되어줬으니까. 화면속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셔도 우리는 댓글속처럼 즐거웠고 자주는 아니어도 긴 시간에 한 번씩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만나는 사이가 되곤 했다.


모든 사이버 우정이 주기적인 실제만남으로 이어지지 않고, 댓글과 DM소통으로 다져진 우정인지라 우리는 쉽사리 서로의 카카오톡 채팅창을 열지 않는다. 사실 그런 상태로도 괜찮다. 이런 우정도 있고 저런 우정도 있는 거니까. 모든 우정은 저마다의 안전거리가 있다. 자주 본다고, 어떤 주제까지 얘기할 수 있다고 그것을 우정의 척도삼고 함부로 줄 세울 수 없었다. 가끔 보지만 따뜻한 온기로 길게 이어지는 우정도 있고, 자매애를 넘도록 불타올랐지만 금방 지나가버리는 시절인연도 있다. 휘의 '아이틴더유' 프로필을 보고 피식 웃고 스와이프할 수 있던 것처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오프라인 만남으로 쉽게 이어지지만 우정의 근간이 오프라인으로 바뀌지는 않아도, 별로 서운하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 멀리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 더 상대방을 잘 알아주며 조용히 응원을 보내는 것. O2O로 채널 확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e-커머스가 대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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