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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ug 04. 2023

[요약 및 서평] 도둑맞은 집중력

1. 불안한 현대인의 집중력

  언젠가부터 독서를 하다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문자 메시지, 카톡이나 일정 알림 등 수시로 울리는 소리나 진동으로 독서를 멈추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 잠깐의 순간은 항상 여파를 가져온다. 휴대폰을 덮고 책읽기에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건 아닌데 싶다.


  집중력! 이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양한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런 모든 외부 자극에 모두 반응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순식간에 지쳐버릴 것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좀 더 나아가 생존이 가능할까 싶다. 한 순간도 무엇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산만한 삶은 힘겹고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행히 인간의 외부 자극 필터링 능력은 탁월하다. 성능 좋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처럼 필요하지 않은 외부 자극을 없는 것처럼 걸러낸다.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신통방통하다.


  우리 인간은 집중력 덕분에 변변찮은 신체 능력에도 다른 동물을 능가하는 문명을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지금 집중력의 산물인 문명으로 인해 집중력이 공격받고 있다. 정말 역설적인 상황이다.


  요한 하리는 이 책의 전반부인 1~4장에서 '도둑맞은 집중력'의 현재 증상을 진단한다. 1장에서 학생들에 대한 관찰 실험 결과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19초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요즘 얘들이 원래 좀 산만하지 하고 혀를 끌끌 찰 성인은 어떨까? 성인 역시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길어야 3분에 불과하다. 이 짧은 집중 시간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오리건 대학 마이클 포스너 교수는 한 번 집중이 깨어지고 다시 집중 상태로 회복하려면 평균 23분이 걸린다고 했다.


  종합하면 길어야 3분 집중하고 23분의 시간은 버리는 셈이 된다. 이 주기를 30분이라고 하고 집중 시간 5분, 버리는 시간 25분이라고 하자. 30분 중 25분은 시간을 버리고 있다. 8시간 근무하는 직장인들에게 적용해 보자. 1시간 일하면 10분 집중하고 50분 산만한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 하루 동안 1시간 20분 일하고 6시간 40분은 산만한 정신 상태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집중한다는 건 몰입한다는 것이다. 창의력, 기억력 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몰입이 필요하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자기 일에 대한 고도의 몰입이다. 몰입해야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스스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산만한 자신을 탓하며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 속 드라마를 보며 가장 낮은 수준의 몰입에 들어간다. 유튜브나 SNS를 하며 몇 시간씩 보낼 때는 정말 깊은 몰입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역시 낮은 수준의 몰입이다. 가치있는 일에 몰입하지 못하여 생기는 죄책감을 저질의 몰입으로 보상받으려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요한 하리는 현대인들이 과거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수면 부족에서 찾는다. 미국인 기준 전체 인구의 40% 정도는 최소한의 필수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은 충분히 수면하지 못하면 기억력이 20~30% 감소한다고 한다. 기억력은 가장 기초적인 정신능력이다. 기억력이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까지 감소한다면 다른 정신능력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긴 호흡이 필요한 독서시간이 엄청나게 줄었다. 2017년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겨우 17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핸드폰 사용시간은 5.4시간이라고 한다. 집중해서 깊이 파고들어 정신적 양분을 취하는 독서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짧고 단순하며 자극적인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요한 하리는 이 지점에서 소설과 소셜(SNS)을 비교하며 소설읽기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체육관과 같다고 비유한다. 현대인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의 상실에 어떤 이유로 확산되고 있는지 암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2. 집중을 방해하는 기업과 사회

  요한 하리는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대표적인 원흉인 스마트폰, 웹 서비스 테크 기업들을 집중조명한다. 언젠가부터 웹 페이지나 SNS 게시물은 페이지 넘김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한 스크롤" 기능 때문이다. 화면 아래로 스크롤을 하면 자동으로 새로운 게시물과 콘텐츠가 로딩된다. 그 끊김없는, 선택이 필요하지 않은 편리한 기능은 사용자들을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에 붙들어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테크 기업의 최대 목표, 어쩌면 유일한 목표는 사용자들은 가능한 화면 앞에 잡아 두는 것이다. 그래야 광고주들을 유치하고 높은 광고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테크 기업의 종사자들은 그런 조치가 사용자들의 정신을 얼마나 좀 먹는지 알고 있다. 유명한 CEO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못하게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개발자들 역시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무한 스크롤 이외에도 테크 기업의 서비스는 사용자의 클릭, 입력하는 단어와 문장을 스캔하고 저장한다. 그리고 데이터로 분석된 후 광고주들에게 판매된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리 취향에 맞는 광고가 화면에 등장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우리가 선호하는 단어와 문장, 말투를 자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요한 하리는 이를 "감시 자본주의"라고 표현한다.


  이 감시 자본주의가 심각한 문제인 것은 단지 상업적인 차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부정편향"이라는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SNS나 웹 서비스에서 긍정적이고 잔잔한 게시물이나 콘텐츠보다 부정적이고 충격적이며 편협한 것을 더 많이 선택한다. 뉴욕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분노를 유발하는 단어를 트윗 하나에 추가하면 리트윗의 비율이 평균 20% 증가한다고 한다. SNS나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 점을 활용한다. 어떤 정보를 부정적이고 폭력적이며 편협한 것으로 몰아간다. 이런 알고리즘으로 인해 현실 세계 역시 갈수록 극단적인 편가르기와 폭력적인 분위기 형성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서 잠시 테크 기업의 알고리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살펴보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스스로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1. '하트'나 '좋아요' 같은 사소하지만 잦은 보상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2. 어떤 일을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이나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긴다.

3.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잘 반응하는 게시글이나 콘텐츠가 자꾸 나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4.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자꾸 화나게 만든다. 화를 내는 것에 비해 관련된 정보나 논쟁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아보지는 않는다.

5. 내가 속한 사회가 온통 화나서 싸우는 사람 천지인 것처럼 느껴진다. 독서나 자녀와의 시간보내기와 같은 느린 활동을 하다가 자꾸 싸우고 논쟁하는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확인하느라 집중하지 못한다.

6. 거짓 뉴스만 믿고 잘못된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3. 누구의 잘못인가?

  집중력을 도둑질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누구나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how)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해결방법 하나가 있다. 바로 집중력 도둑이 장난치지 못하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녹녹치 않다. 가령 다이어트에 대해 생각해 보자. 1960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성인의 몸무가 평균 11kg 늘었다고 한다. 비만인구의 증가세가 폭발적이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모두 살을 빼려고 한다. 다이어트 음식, 운동, 관련 약품 등과 같은 다이어트 산업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전사회적으로 필사적인 노력하여 살을 뺀 사람들을 살펴보자. 100명 중 95명은 요요현상으로 원래 비만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다이어트 실패와 요요현상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개인이 자신의 비만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음식을 줄이고 운동을 하고 약을 먹는 방법은 제대로 된 해결방법이 아니라고 말이다. 실제로 정부에서 나서서 정책적으로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을 개선하고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는 비만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개인이 아닌 사회, 국가가 해결할 문제다.


  집중력 도둑 역시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다. 광고 수입에 혈안이 된 테크 기업들의 기술과 그로 인해 조성된 환경에 개인이 저항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긴 한걸까? 길어야 몇 달 동안 독하게 마음먹고 노력하면 잠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전과 같이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여기서 요한 하리는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1990년대 후반을 주목한다. 이 시기는 경제적 불안으로 중산층이 급격하게 무너진 시기와 일치한다. 경제적 불안과 공포는 테크 기업의 감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늘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직장 상사의 갑질에 대한 일상적인 노출 상황에 유일한 피난처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화면 안에 있었던 것 아닐까?




4.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제 개인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집중력 도둑질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요한 하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대안을 모색한다.


  첫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육체적, 심리적으로 한계상황까지 내모는 가혹한 근무환경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이 불안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테크 기업의 집중력 도둑질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면역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그런데 근무 환경을 편안하게 개선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뉴질랜드의 퍼페추얼 가디언이란 회사는 주4일제 근무를 시작하자 다음과 같은 일이 뒤따랐다.

- 직원들이 회사에서 SNS를 하는 시간이 35% 줄었다.

- 일에 대한 참여, 동료들 간 협동, 일에 대한 집중력이 30~40% 높아졌다.

- 스트레스 수준이 15% 감소했다.

- 주4일 근무로 주5일 근무의 업무처리량을 소화했다.


  근무환경 개선은 켈로그, 마이크로소프트, 토요타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도 그 성공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을 줄이면 집중력이 크게 좋아진다."



  둘째, 식단의 개선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 중 상당수가 고열량, 고혈당 식품이다. 이들 식품을 먹으면 에너지와 혈당이 급상승과 급강하를 오고 간다. 이는 정신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신체적 상태로 만들고 만다. 방부제와 첨가물, 착색제가 많이 함유된 음식 역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셋째, 잘못된 ADHD 처방을 바꾸어야 한다. 현재 미국 청소년의 13%가 ADHD를 진단받고, 그 중 대다수는 약물을 복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일시적인 효과를 가져올 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ADHD를 유전적인 질병으로 간주하여 약물치료로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아이와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운동을 하고 함께 어울려 놀아야 집중력이 개선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해 검증된 사실이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줄이고 신체활동과 놀이를 적극 권장하는 핀란드 학생은 겨우 0.1%만 집중력 관련 문제가 있다고 한다. 13%와 0.1%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생각해 보라. 게다가 학력 향상에 집중하는 미국 학생보다 핀란드 학생들의 학력이 더 우수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5.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집중력'이란 나의 의지에 기반을 둔다. 가치있는 어떤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일 때" 가능하다. 그런데 요한 하리가 비판하는 집중력 도둑질은 나를 주인이 아니라 SNS나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의 노예가 되도록 만든다. 이들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악용하는 알고리즘은 나를 산만하게 만든다. 아무 의미없는 일에 대한 정보를 습관적으로 클릭하게 만든다. 바로 내가 "화면의 노예"인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내가 주인인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가치있고,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 혼자 결심하고 계획하고 실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환경은 직장일 수도 있고, 먹거리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주변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과의 느리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일 수 있다.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나 활동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어찌보면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사실 그리 쉽고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출발점일 수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한 실천 목록이 때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죽고 싶을만큼 벗어나고 싶지만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직장에서의 과감한 탈출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학약품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음식재료를 구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해 나가려면 기존의 인간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하는 희생이 필요하며, 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결국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희생과 노력에 의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 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 교육 문제가 주목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아이들, 과잉행동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공부하지만 학업성취가 낮은 아이들, 무엇보다 저 꽃다운 시기를 시든 낙엽처럼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왜 그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교사로서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큰 숙제를 가지고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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