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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 Jan 09. 2023

설리

당신의 이름이 속한 이 계절에, 당신을 그리워하며

당신을 생각하면 모든 계절이 떠오른다. 당신은 샛노란 봄의 꽃 같기도, 여름의 파릇한 잎사귀 같기도, 가을의 짙은 낙엽 같기도, 겨울의 흩날리는 눈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눈 설과 배꽃 리로 완성된 당신의 이름 설리, 그 두 음절이 속한 계절은 오롯이 겨울이다.


올겨울 몇 차례의 폭설이 내리며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이 겨울의 폭설은 모든 안부의 화두가 될 만큼 가혹했다. 길가는 자주 얼었고 엉겨 붙은 눈에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꼭 잘 챙겨 입고, 잘 챙겨 먹자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흰 눈의 낭만을 곧잘 즐겼다. 첫눈을 함께 맞은 상대를 기억했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꿨다.


엊그제 새벽, 웬만한 이가 잠들었을 때에 다시금 눈이 흠칫 내렸다. 홀연하게 쌓여가는 눈을 보며 나는 어쩐지 이런 마음이 들었다. 겨울은 특별히 처연한 계절이라고. 찬 공기를 마실 때 쓸쓸하고, 내쉴 땐 그리워지는 계절. 올해의 마지막 눈 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더 늦지 않게 당신을 기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겨울은 비밀처럼 보고 싶은 당신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당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당신의 팬을 자처한 지 십 년 즈음되어간다. 생전 당신은 외모가 개인을 재단하는 도구가 되는 일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게는 어쩔 도리 없이 미(美)가 최상의 가치라서 이런 고백이 나로서는 가장 투박한 진심이다. 흠모의 대상을 향한 질투와, 애정과 동경이 한데 어우러져 나는 당신을 우러러보았다. 당신처럼 아름답고자 했다.


나는 당신의 연애를 지지했다. 그와 함께 자유로운 당신이 아름다웠다. 그가 당신을 뮤즈 삼아 외설적인 노랫말을 지은 후로 대중의 시선은 비틀렸지만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하는 당신이 좋았다. 어느 영화 속의 몽상가들처럼 노래를 짓고, 춤을 추고, 바다를 보러 가고, 내일이  것을 알지만  밤에 충실한 연인을 보며 서로를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사랑의 종류를 보았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다가 조금 미끄러져 서로의 섬에 갇히게 되는 일의 실현이야말로 구원적 사랑을 느낄  있는 순간이 아니던가. 당신을 피상적으로 취했다는 질타가 당신의 애인에게 쏟아졌을 때에도 나는 관능은 어쩌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몰래 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면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물이 끓듯 넘치기도 한다는 , 사랑이 순도  프로의 외설이 되기도 한다는  비난하던 이들은 과연 몰랐을까. 예술, 그리고 사랑의 속성은 도덕과 본질적으로 결을 같이 하지 않는다.


당신의 선구자적 행동에 관해선 마음이 나뉜다. 당신은 속옷 착용을 거부했고 그 일에 여성의 선택권을 주장했다. 나는 그 소신에 적당히 공감했지만 굳이, 당신이 메신저가 되어야만 했을까 하는 바람으로 시선이 복잡해진다. 당신의 원석 같은 당돌함이 필연적으로 야기할 비난이, 한 줄기의 굉음으로 날카롭게 마음에 안착하진 않았는지. 때때로 당신의 힘을 소진한 눈동자를 보며 대중은 거리낌 없이 마약을 연상했지만 나는 수술대 위 무력하게 흘리어지는 붉은 피를 떠올렸다. 그래서 자주적인 당신이 불안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더 깊게 기억한다. 당신의 이름을 건 가로수길의 작은 상점과 동료의 방문에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 아픔은 내가 다 거두어 갈 테니 건강만 해달라는 조부모를 향한 염원의 메시지..
그리고 새벽안개 같던 인스타그램 라이브. 당신은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별처럼 쏟아지는 하트나 백색 소음처럼 자리하던 댓글을 흘려보내는 일이 무언가를 씻어내기도 했던가. 이름을 따 노래를 지었을 만큼 당신이 소중히 여겼던 고양이, 블린이가 생각보다 자주 화면에 등장했던 것은 새삼 놀랍기도 하다. 당신은 이따금씩 각도를 이리, 저리 돌려 보였고 때마다 주위를 둘러싼 배경이 흠칫 보였다. 나는 구석에 자리한 십자가를 특별히 눈에 담았다.


십자가. 당신이 믿는 신은 스스로 생을 포기한 이에게 천국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스스로가 십자가 위에서 죄 없는 죽음을 겪음으로 대가를 모두 치렀기 때문일까. 이 겨울 내리는 어느 눈보다 하얗고 투명한 사랑의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포기함으로 생에 대한 사랑을 아프게 증명해 낸 당신의 삶이 면죄부가 되어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저 부단히 우는 일을 멈추기를 원했던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절박의 구원을, 당신의 신은 당신에게 베풀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을 품는다. 사랑의 신이란 기회를 만들어 사랑하는 신일 것이라 믿는다.


당신의 이름을 소유한 이 계절이 한참 무르익어 가는 때. 한동안 눈은 오지 않을까? 밤 길을 걷다 보면 또다시 홀연히 내릴까. 분명한 것은 이번 겨울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다는 것. 또 분명한 것은 나는 영원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꿀 것이라는 것.


그리움만으로도 완성되는 그리움이 있을까?
차가운 온기를 느낀다.
나의 영원한 미의 여신, 당신이 떠난 스물여섯의 마음으로 당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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