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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19. 2022

30대 중반에 젖먹이 둘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어쩌다 해외 이민: 1. 왜 하필 뉴질랜드였나.

왜 하필 뉴질랜드였나.

나는 호주에서만 7년을 넘게 살았고, 신랑은 미국에서만 1년을 살았다. 그런데 뉴질랜드? 


솔직히 말하자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둘째 아이가 생겼고, 뼛속까지 커리어 우먼인 나는 한국에서 애 둘을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성숙한 인간으로' 키워낼 자신이 없었다. 2019년에 뉴스를 통해 보는 '요즘 한국'은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너무나 쉽게 짓밟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나와 다른 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팍팍한 사회였고... 나는 내 아이들을 이런 사회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책임지고 키워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외로 떠나면 문제가 해결될까? 외국으로 가면 우리는 오히려 '소수인종'이고,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한국에서 쌓아 온 10년 가까운 커리어를 버리고 외국에 가서 다시 맨땅에서 헤딩하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말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30대 중반에 젖먹이 애 둘을 데리고, 가족이나 친구 하나 없는 생판 처음 가 보는 나라로 떠난다니. 추천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30대 중반의 나와 남편, 만 두 살의 딸, 그리고 백일이 채 안된 아들. 이렇게 넷이서 손을 잡고.

우리가 일궈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로.


남편과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일단 1년 동안의 출산 휴가 기간 동안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경험해 보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지 가능성을 검증해 보자. 영주권을 딸 수 있다면 좋고, 실패하면 석사 학위를 갖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 어차피 우리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가서 날린 돈은 다시 돌아와서 모으면 될 거라고.


하지만 뉴질랜드로 떠나자마자 세상이 뒤집어졌다.


우리는 2020년 2월 말에 오클랜드에 도착했고, 3월부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서 그 달 19일부터는 국경이 봉쇄됐다. 국가적 락다운(lock down) 정책 시행에 따라 우리는 몇 달 동안이나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시간을 보냈다.


장기 체류 비자를 얻기 위해 마케팅 준석사 과정을 등록했던 나는 1학기의 대부분을 원격으로 수강해야 했다. 영주권은커녕 친구 한 명 사귀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결과만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결국 영주권을 손에 넣었고, 현지에서 취업도 해서 먹고살 길을 확보했다. 

아직 크고 작은 난관이 무수하게 남아있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의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미친' 도전을 망설이지 말자.


그런 취지에서 내가 겪었던 미친 도전의 기록을 남겨 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어디에선가 2019년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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