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말하기를 두려워 했던 통역사 그 두려움의 시간에 대한 고백
나는 영어로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실수를 해서 비웃음을 살까봐.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끌어올렸다. 내 실력이 탄탄하면 두려움이 저절로 없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두려움은 그런 식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먼저 깨달았어야 했다. 아니 실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런 모습을 스스럼없이 내보일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의 지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출발했어야 했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행복한 통역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중요한 깨달음이 없이 노력만을 거듭해서도 어느 정도 높은 성과는 달성할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어찌됐든 결국 통역사가 된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진다. 전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채찍질 했던 두려움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맹렬한 기세로 나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통역사씩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 전보다 열배 백배 더 영어로 말하기가 싫고 두려웠다. 특히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전문용어보다 일상적인 언어에 오히려 서툴렀는데 그런 약점을 들킬까봐 진저리가 나게 무서웠다. 통역 현장은 나에게 전쟁터였다. 연사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이라도 할까봐 숨이 막힐 듯이 괴로웠다. 내가 가진 약점이 너무나 터무니없을 만큼 크게 느껴져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괴로움을 계속 안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결국 나는 그 자리를 버리고 떠나게 되었다.
통역대학원에 합격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한 것이 1년 6개월, 통역대학원에서 지독한 자기혐오와 싸우며 고통스럽게 버틴 시간이 2년. 통역사로 버틴 기간 3년. 총 6년 6개월분의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역사로 남지 못했다. 이 경험은 실패일까. 지금 통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큰 값을 치르고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뭐가 되면 뭐가 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만약 내가 영어로 말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말하는 두려움을 먼저 떨치고 나서 공부했더라면. 실수하는 나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여가면서 공부했더라면 어쩌면 아직도 행복하게 통역사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이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수학 문제를 잘 못 풀어도, 영어 발음이 엉망이어도 그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그 반대가 아니라.
남보다 빨리 달려가려고 온힘을 다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자.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팀 페리스가 말했듯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진정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