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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현 May 24. 2017

걱정하지 마라. 남들도 잘 모른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 남들은 다 잘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걱정하지 마라. 남들도 잘 모른다.    

-팀 페리스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던 시간이 있었다. 아.. 완벽주의가 내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킬 뻔 했던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내면이 부서질 듯 나약했다는 의미이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는 의미이다.  


대학교 때 무슨 영화를 좋아하냐,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 작가는 누구를 좋아하냐 이런 류의 질문을 받으면 무척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대답을 하든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그 영화는 쓰레긴데. 수준이 낮네. 그 작가는 얄팍한데.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올 까봐 겁이 났다. 실제로 주변에 그렇게 꼬여있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유유상종이라고 내가 어둡고 불안정했으니 비슷한 사람들만 내 주위에 모여들었던 것이다.


불안정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한 도구로 완벽주의를 택했다. 뭐든지 간에 하여간 엄청나게 완벽을 추구하면 완벽 비슷한 것이라도 돼서 누구에게도 까일 일이 없게 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쪽으로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불행해졌다. 극한의 방어 태세를 갖추니 공격당할 일만 생겼던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완벽은 없고 약점만 보였으며 주변엔 지적하고 빈정거리고 비웃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들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정말 열심이었다. 아주 열심히 성실하고 꾸준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방향으로 그렇게까지 열심히 달렸으니 탈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온갖 신경성 질환에 시달렸고 우울증도 심하게 앓았다.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깨우쳤다면 좋았겠지만 벼랑 끝에 내몰려서야 다른 방향을 찾는 것이 인간인지라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주변을 살피고 눈치를 보았다. 잘 모르고 어설프다는 것을 들킬까 겁을 냈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았어야 했다. 대신 내가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고 부끄럽고 겁에 질려있는지, 무슨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이 정말 진실인지를 생각해보았어야 했다.


걱정하지 마라. 남들도 잘 모른다. 몰라도 된다. 모른다고 해도 된다. 몰라도 된다는 것을 믿고 하루라도 빨리 편안해 져라.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잘 모르고 어설픈 내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을 때 내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굳은 어깨가 펴지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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