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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희 Aug 10. 2020

<맥베스> 비극의 시작, 어디서부터 인가?

탐욕과 양심 사이의 갈등,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담다.

<맥베스>는 16~17세기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W.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맥베스> 역시 오늘날까지 연극과 영화는 물론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많은 각색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본성을 꿰뚫어 이를 유려한 언어로 표현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그의 통찰력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 그 어느 철학자보다 앞섰고 날카로웠다.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얘기, 과거의 얘기가 아닌 현재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얘기인 것이다.

 



<맥베스> 역시 '인간의 욕망'이라는 속성을 잘 꿰뚫어 탐욕을 쫓다가 맞게 되는 파멸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주인공 맥베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때, 우리는 통쾌함이나 인과응보의 당연함보다는 연민과 동정의 눈으로 보게 된다. 우리 모두 맥베스처럼 욕망으로 꿈틀거리며, 언제든 이성과 양심이 약해짐을 틈타 걷잡을 수 없는 탐욕으로 바뀔 수 있는 즉, 욕망과 양심의 경계선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세 마녀 대사를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세상을 보는 눈을 감지할 수 있다. 세상과 인간 모두 모순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빛과 어둠, 질서와 혼란, 욕망과 양심, 강과 약... 등 상반되는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한다는 것.    

맥베스는 욕망(특히 권력욕)과 양심 사이의 갈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완전히 악하지도, 완전히 선하지도 않은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세상 또한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질서가 회복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끌어간다.

 

맥베스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그는 그래 미스의 영주로서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 마녀의 예언은 그를 욕망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코도의 영주까지 되고 보니 마녀의 예언을 더욱 철석같이 믿게 된다. 두 번째까지 이루어졌으니 세 번째 예언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그를 지나친 권력욕을 갖게 만들었다.

세 마녀는 성공 속의 함정을 의미한다. 나약한 우리 인간은 성공했을 때 오히려 더 함정에 쉽게 빠진다.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욕망은 뻗어간다. 돈이 많아도 더 갖고 싶고, 권력을 가졌어도 더 갖고 싶은 우리의 현 모습과 다름없다.  

 

이건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맥베스 부인은 그의 권력욕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맥베스 혼자였다면 감히 할 수 없을 일을 부인의 부추김으로 과감하게 던컨 왕을 찔러 죽이고 시종들의 일로 꾸민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탐욕은 자발적이고 주체적 요인보다 비주체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본 것일까?

 

맥베스는 한 번의 행동으로 모든 일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한 뒤 죄책감과 불안,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동료인 뱅코우까지 죽인다. 뱅코우에 대한 예언은 그를 괴롭혔고 이제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악을 행한다. 악이 또 다른 악을 낳고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모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죄책감에 시달린다.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며 유령을 본다. 양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맥베스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던컨 왕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밀 때의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몽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는다. 그 역시 욕망과 양심의 공존하고 갈등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맥베스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는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한번 가속되어 끝없이 질주하는 욕망 앞에서 양심이라는 브레이크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혼란은 다시 질서를 찾게 된다. 반성을 통해 회개하거나 혹은 파멸의 순간이 오거나....       

맥베스의 경우는 후자였다. 맥베스는 다시 한번 마녀를 찾아가 예언을 듣지만 여전히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맥더프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오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탐욕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맥베스>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 모순이 공존한다는 것, 세상도 그렇다는 것,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옳다/그르다 혹은 맞다/틀리다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 아닐까? 인간을 들여다볼수록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게 한다.

과연 욕망은 어느 정도까지 만족되어야 멈춰지는 것일까? 성공하면 할수록 욕망의 속삭임은 더욱 우리를 유혹한다. 함정에 빠지지 말자.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Life's but a walking shadow)"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었다.
내가 언젠가는 듣게 될 소식이었다.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하루하루 살금살금 기어서 가고
우리의 모든 과거의 일들은 바보들이 허망한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 왔다. 꺼져라, 꺼져라, 단명한 촛불이여!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
무대 위에 있을 땐 잠시 동안 뽐내고 떠들어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할 뿐: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
........
이젠 결심을 굳혀야겠다, 악마들이
두 갈래 혓바닥을 가지고 참말 같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겠다.      

[출처] <맥베스> 5막 중

< 책을 읽고 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2020.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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