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스마트 폰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은 반가운 존재는 아니지만 고마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와 함께 보는 TV 만화나 동화책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또래 친구들이 생기고 그들과의 공감대가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되면 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모바일 게임이 나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절대적인 수단은 아니지만 그 중요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장담하건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들에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스킨이 뭐야?” 또는 “네 무기 중 어떤 것이 제일 세?”라는 질문을 하면 아무리 무뚝뚝한 아이라도 십중팔구는 자연스럽게 입을 열 것이다. 나는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물리학 수업을 듣듯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게임 캐릭터, 스킨, 무기 등을 자랑하면 열심히 듣는다.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어가며.
강물 : 엄마, 김지은이 핼러윈 이벤트 깨 준다고 했어.
나 : 그랬어? 좋겠다.(무슨 내용인지는 확실히 모름)
아이들은 요일마다 정해진 규칙대로 공부를 하고 일정 시간 책을 읽어야만 스마트 폰 게임을 할 수 있다. 그날 게임 시간에 마이산이 풀이 죽어 있었다. 다른 때는 신나서 게임을 했었는데.
나 : 마이산, 오늘 게임이 잘 안 돼?
나를 올려다보는 마이산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태연함을 가장하고 물었다.
나 : 왜 울어?
마이산 : 나는 핼러윈 이벤트를 깰 수가 없어.
나 : 너도 김지은한테 해 달라고 하면 안 돼?
마이산 : 안 돼. 나는 구글 계정이야.
나는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울고 있는 아이에게 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강물이가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강물 : 내거는 좀비고(게임 이름) 아이디로 김지은이 접속해서 할 수 있고, 마이산거는 구글 계정이라서 할 수가 없어.
나 : 네가 해주면 안 돼?
강물 : 나랑 마이산은 레벨이 낮아서 안 돼. 총 4단계를 클리어해야 스킨을 줘. 만 오천 원짜리 스킨이야.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마이산의 친구들의 이름을 머리에서 쥐어짜며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해 보자고 아이를 달랬다. 그 친구들은 좀비고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서 마이산은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다. 안쓰러운 마음에 내입에선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나 :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까 방법을 생각해보자. 정 안되면 엄마가 스킨 사줄게.
이걸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다니. 순간 후회가 되었지만 늦었다.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내 말을 들은 마이산은 조금씩 진정이 되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마이산이 다가왔다.
마이산 : 엄마, 나 스킨 안 사줘도 돼. 괜찮아.
나 :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태연하게) 왜? 가지고 싶잖아.
마이산 : 아까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 그리고 나 현질(게임 아이템 등을 돈으로 사는 것) 안 하기로 했잖아.
아이가 나보다 낫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아이가 스스로 수습해줬다. 나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확실하게 정립해 줄 기회가 이때다 싶었다. 그동안 장난감을 수단으로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이모 찬스, 고모 찬스, 할아버지 찬스로 실패를 겪었기에 신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 마이산, 아까는 그 스킨이 정말 가지고 싶었지?
마이산 : 응, 강물이도 갖게 되니까 나도 꼭 가지고 싶었어.
나 : 그런데 왜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마이산 : 내가 전에 현질 안 한다고 엄마랑 약속했잖아.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까 없어도 괜찮을 거 같아.
나 : 같은 스킨이지만 낮에는 그 스킨이 꼭 필요하지는 않은 ‘원하는 것’이었던 거야. 스스로 깨닫다니 마이산 대단한걸.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순간의 만족감을 생성해내는 존재, 없으면 안 되는 꼭 필요한 존재. 원함과 필요함이다. 원함이 이루어지면 행복지수, 만족지수가 급상승하지만 그 속도에 비례해서 다시 그 지수는 허무함 또는 공허함을 남기고 하락한다.
나는 아이가 그 허무함이나 공허함의 실체를 이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마흔이 넘은 나도 ‘득템’이라는 명목으로 충동구매를 수시로 저지르고 후회를 일삼는데, 열두 살의 아이는 오죽할까. 스스로 원함과 필요함 사이의 경계를 확립하고 잘 지키는 모습을 나부터 보여야겠다. 어쩌면 아이들이 더 잘 지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