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만나 좁아지거나 넓어지거나.
가수, 배우, 화가, 작가, 포토그래퍼처럼 남다른 재능으로 창작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흔히 아티스트(artist)라 부른다. 아티스트는 무대와 팬(독자, 고객, 유권자)이 있어야 존립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치, 경영 분야로 더 확대 될 필요가 있다. 세인들은 아티스트는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재능, 유능함, 탁월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생을 마감한 아티스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글, 그림, 음악, 연기, 연설, 스포츠등 두 가지 이상의 영역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성품이 여리고 착하다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독선적이고 자기멋대로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끼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재해석이 늘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주제파악이 안되면, 중요한 만남, 직업을 정할 때 선택의 오류를 겪게 된다. 이 결과로 살아가는 동안 일반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나아가 절망스런 상황에 이르면, 대개 선택이 부적절 했다거나, 운이 없어서, 어딘가 잘 맞지 않아서 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사실 자신에게 정작 무엇이 필요했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선택의 오류는 때때로 만남속에 관계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삶의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내 귀에 캔디’ 같은 달콤한 말에 길들여져있기에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변 사람의 ‘상황은 맞는데 실제는 틀린 말’에 귀를 기울여 낭패를 겪기도 한다. 사례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뮤지컬 배우, 가수인 차지연씨가 MBC 복면가왕 출연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언급했다. "사기꾼에게 많은 돈을 뜯겼다", "7~8년 가까이 떠돌아다녔다. 이상한 것도 많이 했다. 인공지능 앨범을 낸다고 했다. 자동차 안전 테스트할 때 있는 더미 마네킹을 스튜디오에 갖다놓고 걔네들이 감지를 한다고 했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이상한 것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국 사기였다“
90년대 '일과 이분의 일'이란 히트곡으로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투투의 김지훈씨 사례이다. 삶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집안 막내로 태어났다. 1990년 서울 인창고 재학 중, KBS 청소년창작가요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 되어>란 곡으로 본선에 진출했으며 첫 데뷔이기도 했다. 이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클럽에서 솔로로 락 음악활동을 했다. <일과 이분의 일>이란 히트곡으로 잘 알려진 투투(Two Two)로 94년 가요계에 정식 데뷔, 99년 댄스 팝 음악그룹 듀크(Duke) 보컬로 활동했다. 이후 2001년 경인방송 시트콤에 립스틱 연기자로 데뷔해 MBC 시트콤 카메오로 연기자 생활을 했다. 2009년 뮤지컬 위대한 SHOW에 출연했으나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었다.
그는 성대모사, 모창, 성악과 그림 그리기와 개그에 특기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음악그룹 투투, 듀크의 활동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런 그가 2013년 12월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향년 41세 였고 언론에 알려진 그의 죽음에 대한 배경은 '빚 독촉' '무속인이 된 아내' '우울증'이다.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없다.
김지훈씨가 가수로서 부른 곡들을 나열해 보면 <일과 이분의 일> <내 인생의 러시아워> <너의 눈에 슬픈비가 내리고> <그대눈물까지도> <홀로 지낸 기억> <재수생> <음주운전>이다. 이 가운데 어떤 노래제목이 눈에 띄는가? 노래 제목만 보면, 주된 느낌이 힘들고 슬픈 추억들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일과 이분의 일'이란 노래는 변심한 연인에 대한 노래이다.
반복되는 가사가 "둘이 되어버린 날 잊은 것 같은 너의 모습에 하나일 때 보다 난 외롭고 허전해 니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그래서 넌 둘이 될 수 있었던 거야"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백이 느껴진다. 내 절반을 가져갔으니 아쉬움도 크기에 집착이나 미련이 남을 만도 한데 오히려 상대가 잘 되었으면 하는 느낌을 준다. 여리고 착한 구석이 느껴진다.
연예인들이 인간관계에서 손실을 보는 것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 씨는 "연예계 생활만 한 연예인들은 세상 물정에 어둡다 보니 이들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파트너나 브로커의 타깃이 되기 쉽다"며 "예산도 일반인 수준이 아니다 보니 투기성 투자와 연결될 환경에 놓이기 쉽다"고 설명했다
모 기획사 본부장은 "연예인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때로는 주변 사람이 연예인의 이름을 팔아 투자금을 끌어들여 동업하는 경우도 있다"며 "투자자는 돈을 받기 어려워지면 결국 연예인을 걸고 넘어진다"고 했다. 이들 연예인들의 공통점 역시 평소 믿었던 지인에게서 큰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며 이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왜 그럴까?
순도 100% 끼를 가진 사람들은 대개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이다.
이들은 인간관계에서 희로애락을 일반인 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낀다. 그 차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마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순도 100% 끼를 가진 사람들은 열정적이며 사려 깊고 배려심이 많다.
이와 비례해 예민하며, 독선적이며, 우울감이 크다.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입으면 그 후유증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들이 때로는 망각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끼를 가진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고통을 겪게 될 때, 그 누구보다 선택을 잘해야 한다. 선택 자체가 문제해결 방법이며 삶의 방향을 결정 짓기 때문이다. 끼를 가진 사람들은 남과 다른 눈으로 사람, 사물을 바라본다. 문제를 만나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는 창의력(creative strength)이며 재해석 되면 치유력(curative strength)가 된다. 이는 아티스트들에게 신이 부여한 재능이자 특별한 선물이다.
재능이 재해석 되어질 때 선물로서 스스로와 주변인에게 인식된다. '선물'이기에 의미를 잘 알게 되면 감사와 기쁨이 배가 된다. 그러나 의미를 잘 모르면, 겉 포장지에 실망하거나 내용물이 기대와 달라 이내 결핍에 빠지게 된다. 가진자(the rich)가 분명함에도 빈자(the poor)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떻게 창의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아트웍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20세기 미술계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한 다음의 두 가지 말을 참고해 볼만 하다.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창의성에 관해서는;
"좋은 예술가는 베낀다. 위대한 화가는 훔친다"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난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을 쓴다." (When I haven't any blue, I use red.)
1. 첫 번째 말은 표절, 복제를 정당화 하라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작품 세계를 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창의성에 대해 "창의성은 새로운 것들의 옛날식 조합과 옛날 것들의 새로운 조합(new things in old combinations and old things in new combinations)을 통해 생겨난다."고 했다. 이는 열린 사고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다시 살펴보고 재해석해 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것을 참고해 전혀 다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독창성(original)'이 발휘된다.
2. 두 번째는 말은 쉬운데 행동에 옮기기 가장 어려운 말이다. 대개 사람은 무엇인가 새롭게 만드는 창작의 고통을 감수하기 보다, 자신의 지식, 경험을 믿는다. 아니면 자기 보다 더 똑똑한 사람, 권위자의 말을 귀 담아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타인이 충고,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어도 책임을 함께 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오롯이 자기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필요(가지고 싶은 것)와 필수(꼭 필요한 것)의 차이를 구분하게 되어 충동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수 있게 된다.
삶의 문제란 본질적으로 결핍(lack)의 문제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부족하거나 전혀 없다면 결핍을 겪게 된다. 인간은 결핍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이를 채우려 한다.
먼저 부정적인 결핍을 생각해 보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옛 속담 역시 작은 결핍이 큰 결핍을 만들 수 있음을 말해준다. 청소년들의 일탈, 범죄 행위 역시 가정 환경 결손이라는 구조적 결핍에 있음이 많은 연구사례에서 볼수 있다.
연인간 한 편의 편향된 결핍이 데이트폭력을, 가족 구성원 간의 결핍이 가정폭력을, 회사 내의 위계와 조화의 결핍이 일터폭력을 만든다. 이처럼 결핍은 인간을 집요한 이기심에 사로잡히게 한다. 또한 결핍을 해결하려는 본능은 폭력적인 수단마저 서슴없이 사용하게 한다. 이는 부끄러움을 느낄수 없는 고장난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의 남다른 점은 결핍을 채우는 방법과 과정에 있다. 옷이 얼룩져 더러워졌다고 새로 사거나, 차가 고장이나 움직일 수 없다고 새로 사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효용가치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해 문제를 해결한다. 정작 문제는 인간은 사물 보다 인간관계에서 유독 부적절하거나 비합리적인 선택을 해 곧잘 어려움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믿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결핍이 생겼을 때, 대개 즉시적인 채움이 가능한 결정을 한다. 이는 편향적이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카소가 "난 파란색이 없으면, 빨간색을 쓴다."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닫힌 사고는 파란색이 없다는 것에 낙심하고 절망한다. 일, 인간관계, 작품 활동마저 어제 좋았던 것이 오늘도 좋을 수는 없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막힌 벽을 만나거나 오도 가도 못하는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야 말로 갱신할 기회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이것으로 끝'이란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연유로 아티스트들은 더욱더 깊이 자신의 내면속으로 들어간다. 숨막히는 심연의 바닥과 수면 위를 오가며 마음은 나약해지고 무겁게 가라앉아 결국 무기력에 사로잡힌다.
아티스트들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삶의 결핍을 채워 나간다.
한 부류는, 문제 자체에 집중하고 집착한다.
여린 성품의 사람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학하며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강직한 성품의 사람은, 연관된 사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하고 책임을 따져 묻는다. 이 둘은 가진 성품의 경향은 달라도 '탓'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문제의 발생 원인을 끊임없이 파헤쳐 나가며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 자신은 물론 친구들을 하나 둘 씩 잃어가게 된다.
또 한 부류는, 문제에 집중하거나 매이지 않고 삶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아티스트들은 타고 나기를 그 끝을 알수 없는 깊은 내면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얼마나 깊은지 "이런 자신을 잘 모르겠다" 라거나 "이런 작품을 어떻게 내가 만들 수 있었는지 자신도 놀랍다"'란 말을 종종한다. 한 술 더 떠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이것을 하게 되었다"란 말도 한다. 옛 어른들이 사람의 마음의 깊이를 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하늘이 높고 땅이 깊은 것처럼, 왕의 마음도 헤아리기 어렵다."라고 했다.
현대 과학은 과거에 불가능 했던 지구상의 큰 강, 바다의 깊이를 인공위성으로 측정해 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은 상대 말의 반응 정도에 따라 그 깊이가 어떠한지 ‘근사치(approximately)’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물이 아무리 깊어도 두레박을 던지면 수면에 닿는 파열음을 듣고 깊이를 가늠해 볼수 있다. 그러나 인간 마음의 깊이는 정말 알기 쉽지 않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해 보면, 감정적인데 이성적이며 이성적인데 감정적이기도 하다. 이것을 원하는 줄 알았는데 저 것을 원한다고도 한다. 이해한 듯 했는데 오해하고 있다. 명랑한 아침 해처럼 분명한 듯 했는데 이내 물안개 가득한 습지가 되어 버린다. 한 마디로 종잡을 길이 없다.
가수 애즈원의 노래 중 ‘원하고 원망하죠’가 있다. 원하는데 원망하다니……. 인간관계에서 상대가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 깊이 대화해 보니 “원했기에”, “기대했기에”, “변화 되리라 믿었기에” 그랬다는 말을 듣게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 마음의 깊이를 헤아린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삶의 결핍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의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아티스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알고, 문제의 재해석 통해 결론을 잘 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결핍이란 세상과 그 안에 사람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기준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이 나왔고 때론 성공도 하게 되었다. 설령 자신이 당대에 혹평을 받더라도 후대에 높이 평가를 받기도 하니 성공의 여부는 시간이 증명해 줄 일 이다. 다시 말해 진짜 성공은 자기소관이 아니며 운이거나 다른 한편 신의 뜻이 그러했다고 말한다.
결핍을 느끼는 것은 필요한 것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차고 넘치는 과잉 상태에서도 결핍을 느낄 수 있다. 어디에서나 상시 접속 가능한 인터넷 환경과 풍부한 포털 검색 결과에도 가치 있는 정보를 찾기 힘든 것이 그렇다. 맛집 블로그 게시글이 넘쳐 나는데도 정작 맛있게 요리하는 집을 찾기 힘들거나, 이슈 때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기사 보도에 정작 사실에 근거한 신뢰할 만한 기사를 찾기 힘드니 말이다. 오죽하면 선택장애란 신조어가 나왔을까. 무엇을 선택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선택장애라 하는데, 이는 선택지가 과잉 상태여서 그런 것이다. 그것이 음식이나 물건이나 사람이든지 말이다. 가령 자신의 진로에 대해 선택장애를 느낀다면 아마도 결핍으로 오인된 욕구가 과잉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더하기 말고 빼기를 잘 하자란 메시지가 즐겨찾기가 되어 회자되기도 한다.
결핍은 부족과 과잉 상태의 양극단에서 일어난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는 것이 균형이다. 사람들에게 삶의 희로애락이 주는 의미를 그 누구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진 사람들이 아티스트이다. 아티스트들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짜 문제와 가짜 문제를 잘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가짜 문제는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때 오고,
진짜 문제는 스스로를 객관화 하지 못할 때 온다.
정작 이 문제의 핵심은 결핍에 대한 착각, 오해, 환상, 망상이 삶의 본질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삶의 결핍을 만나게 될 때 마음이 좁아지면 이내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상황, 조건에 갇히게 된다. 반대로 넓어진다면 시선은 삶의 한계 너머를 볼수 있게 될 것이며 삶의 무대 경계는 무한히 넓혀질 것이다. 자유는 모든 사람의 추구하는 본질적 욕구이다. 아티스트들은 더욱 그러하다. 매이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결핍이란 손님이 찾아올 때 편히 지내다 가실 수 있게 내 마음의 저수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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