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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Apr 17. 2023

[수필] 다시보기

2021년 한국문학세상 기고작

내가 즐겨보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손재주가 좋아 “달인”이라고 불리는 개그맨 김병만이 연예인들과 함께 정글에 들어가서 며칠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인데 10년째 방송을 할 만큼 인기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다양한 정글의 자연 속에서 직접 낚시와 사냥을 하고 야영을 하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내가 직접 가볼 수 없는 곳을 눈으로 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올해 초 잠정 휴방을 하였고, 몇 달 후 국내의 섬들을 찾아다니는 컨셉으로 바뀌어 방송을 시작하였다. 국내의 바다와 섬들도 해외의 자연환경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내가 가볼 수 없는 오지에서 촬영한 에피소드들보다는 덜 흥미로울 수밖에 없기에 수년 전 방송했던 지난 에피소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각종 스포츠 리그들이 잠정 중단되었을 당시에 많은 사람이 지난 시즌의 경기들을 다시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도 골프와 야구 영상들을 찾아서 다시 보곤 했는데, 다시 보기를 통해서 본 지난 과거의 모습들을 보다 보면 그 장면 속 사람들의 유행어와 옷차림을 통해 그 시절이 떠오르게 되고, 그러다 가끔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기게 되곤 한다.


다시 보기를 통해 5년 전 “정글의 법칙” 에피소드를 보다가, 연예인들이 정글로 떠나기 전 공항에 모여서 출국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왔다. 인기 연예인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북적이는 인천공항의 모습을 보니 무언가 생소하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회적 거리도 두지 않은 채 서로 부대끼는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얼마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진지 벌써 1년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 온 시간이 참 길었던 것 같은데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고, 1년 전 평범했던 우리의 삶이 이제는 생소한 모습이 되었다.


우한에 바이러스가 창궐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겼고, 한국에 어느 종교단체를 통해 대유행이 되었을 당시만 해도 그저 내 조국과 가족을 걱정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지난 2월 말,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직장에 확진자가 나와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자택 근무를 한다는 소식에 걱정하는 나를 회사 동료들이 함께 걱정하며 위로해주었는데, 그때는 누구도 이 바이러스가 태평양을 건너 우리에게까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3월의 어느 날, 직장에서 보스가 우리를 한 곳에 다 부르더니 컴퓨터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고 별도의 지시가 오기 전까지 집에서 일하라며 우리를 다 집으로 돌려보냈고, 다시 복귀하라는 지시는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려지지 않은 채 모두가 자택 근무를 하며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동료들이 함께 걱정해주었던 대한민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 확산을 잘 저지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북미 땅은 이제 더 이상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러, 굳게 닫힌 국경 너머 있는 이웃 나라 미국은 죽어가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추스를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힘들어한다고 하지만, 올 한해 그 누구보다도 가장 고생한 사람들은 바로 의료진이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아내는 하루하루 전쟁터로 출근을 하고 있다. 매일 저녁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아내를 보면, 고마우면서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의료진을 가족을 두고 있기에 더욱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 한해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회 활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해 되도록 집에만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는 것이 좀이 쑤시고 답답했는데, 이제는 잘 적응했고 오히려 건강도 되찾은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이러스로 인해서 회복된 것은 내 건강뿐만은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올해 초반에 한국의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맑아지고, 인도에서는 히말라야산맥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주는 교훈을 찾기 시작하였고, 이 바이러스는 지구가 우리에게는 경고라고 말하기 시작하며 각성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때만 해도 바이러스가 곧 종식될 것 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연약한 우리는 그 각성의 목소리를 외치던 시기가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어느 새부터인가 New Normal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져 버렸고, 마스크를 쓰고 서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삶이 당연한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이 빠른 적응력은 결국 또 다른 재앙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또다시 서로 모여 함께 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이동 제한 조치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기 시작했고, 음모론이 속출하기 시작하며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됐다. 그 결과 2차 대유행이라는 시간을 맞이하며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노약자가 이 바이러스 앞에서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 아파트 쓰레기장에 갔더니 플라스틱 재활용 박스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식당에서 식사하기보다는 배달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2차 대유행보다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아마도 우리가 내다 볼 수 없는 미래에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의 후폭풍일 것이다. “정글의 법칙” 다시보기를 통해 보고 있는 수년 전 지구의 정글은 참 아름답지만, 어쩜 이제 그 모습은 평생 다시보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광경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아내가 일하는 병원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속출해서 더 환자를 받지 않고 중환자실의 환자들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전문가들는 이번 연말연시의 다양한 사회 모임들로 인해 내년에는 더 확진자가 늘어나리라 전망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서로를 위해 조금씩 배려하는 지혜와 인내를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과 취업준비생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이 웃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꼭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도, 먼 훗날 우리가 2020년을 다시보기로 돌려 보았을 때,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지금 이 시기가 오히려 더 살기 좋은 시기라고 추억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해본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 하면서 스스로 물어본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시대를 다시 보기 한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역사속 어떤 존재들로 기억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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