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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Apr 17. 2023

[수필] 적절한 거리

아내와 함께 한국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 부부가 나오는 관찰 예능인데, 운전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계속해서 운전에 대해 지적을 하니 남편이 화를 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던 내 아내가 대뜸 “완전 당신이랑 똑같네” 하면서 내게 핀잔을 주었다. 결혼 후 나의 잔소리가 더 많아졌다며 불평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잔소리꾼이다. 요즘에는 무엇인가를 자주 하거나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꾼이라는 표현보다는 ‘프로’라는 말을 붙이는데, 그렇다면 나는 ‘프로잔소리언’이다. 집안에서는 장남이었고, 주로 모임 자리에서 내가 연장자인 경우가 많았다. 캐나다에 처음 유학을 왔을 때 함께 시작했던 유학 동기들 사이에서도 맏형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같은 고향에서 함께 유학을 왔던 한 살 어린 후배에게 잔소리를 하도 많이 해서 그 후배는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어 할 정도였다. 군대에서는 나보다 세 살이나 많았던 만  후임에게 일과가 끝나고 막사 뒤로 불러 한 시간이 넘게 잔소리를 하였는데, 제대 후 그 형님을 만날 때면 그 시간이 군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말한다.


모태신앙인 나는 결혼 전 청년 시절에도 교회 안에서프로잔소리언이었다. 또한 여기저기 다 참견하고 다닌, 오지랖이 넓은 '오지라퍼'였다. 내 딴에는 같은 처지에 혼자 사는 유학생들을 챙긴다고 마음을 쓰는 것이었지만, 신앙생활 부터 사회생활 까지 사사로운 지적에 많은 이들이 불편해했다. 대학 시절에는 블로그 활동을 하며 내 생각을 인터넷에 공유했었는데, 10년 전 글들을 다시 열어보면 온통 세상에 대한 잔소리였다.


사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한 마음이고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것을 잔소리로 받아 들이며 힘들어했다. 때론 내가 상처를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서운함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다르게 이제는 ‘new normal’이라는 표현 아래, 인류가 이 바이러스와 싸우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팬데믹 시기 가운데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 (Social distancing)’ 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대화를 통해 나오는 나의 비말이 상대방에게 묻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적절한 거리를 두어서 혹시나 내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역 행동 수칙이다.


나는 처음에는 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회적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 안에서 많은 정서적인 부작용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거리 두기로 인해서 교류가 적어지면 감정이 메마르고 병들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였다. 하지만 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프로 잔소리언’인 내게 준 한가지 메시지가 있다.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있는 적절한 거리 두기는 서로의 안전을 위한 배려이고 더욱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프로 잔소리언’이고 ‘오지라퍼’인 나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나의 일방적인 사랑을 핑계로 우리가 지켜야 할 적절한 거리 두기를 무시한 채 선을 넘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내가 거리를 두지 않고 선을 넘었던 그 시간은 모두 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유학을 왔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향수병으로 아팠고, 군 시절에는 나 또한 심리적인 불안감이 존재하였으며, 청년의 시기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성공에 대한 갈망 속에서 방황하였다. 그리고 이런 바이러스들이 내 잔소리 가운데 나의 비말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전달 되었을 때, 도리어 그들에게는 그것이 약이 아닌 독이 되어 더 큰 아픔을 주게 된 것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안에 적절한 거리 두기는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감정적으로도 꼭 필요하다. 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지나친 관심과 배려를 보낼 때 그것이 고스란히 바이러스로 전파가 되어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에, 적절한 거리 두기는 무관심이 아닌 때론 배려가 될 수도 있다. 그 거리의 기준이 ‘사회적 거리 두기’처럼 일정한 수치를 말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안에 적절한 거리가 형성된다면 정서적으로도 더욱 더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안에 적절한 거리를 통해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세상을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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