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병오월 임진일
오랜만에 커피 빵을 구웠다. 정확히는 화분 빵이다. 최근 식물 멍 아침 루틴 하나가 추가되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베란다 앞에 앉아 초록 잎사귀들을 바라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바라보게 되고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식물 멍을 때리며 밤사이 별일 없었는지 관리가 필요한 아이는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곱게 갈아진 원두 위에 뜨거운 물을 따르면 볼 수 있는 봉긋한 커피 빵을 식물을 키우면서도 볼 수 있다. 물조리개에 담긴 물을 조심스레 따르면 화분 속 흙이 부풀어 오른다. 화분 빵도 커피 빵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샤워 수도꼭지를 틀어 여기저기 흩뿌리며 물을 주거나 바가지에 물을 담아 던지듯 물을 주었는데, 나의 편의에 의한 이런 행동은 식물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조리개의 좁은 입구 사이에 흐르는 물줄기는 마치 곱게 갈린 원두 위에 따르는 물과 같이 흙 사이사이에 물을 머금고 부풀어 오른다. 요즘은 커피 빵이 아니라 화분 돌보기로 만들어지는 화분 빵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뒤숭숭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만세력을 확인하니 오늘은 임진 일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올해 들어 사주명리 육십갑자에 대해 알아가는 중인데 오늘 같은 날 이런 일이 생기면 맹신하게 된다. 나의 생각이 크게 부딪히는
날, 나와 맞지 않는 용의 날, 진토일.
화르륵 타올라 흥분했다가, 제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치를 떨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이내 후회를 하게 되는 요상한 패턴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좀 더 바짝 깨어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무기 하나를 챙겨야겠다. 커피든 뭐든.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