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최근 남편과 맛집을 고르면서 '흑백 요리사' 출연자의 가게를 가보자고 약속을 했다. 그 이후에도 지인들이 이곳은 꼭 가보자고 나의 다짐을 받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회자되었던 프로그램.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는 단순히 요리 대결이 아니다. 이건 삶의 이야기고, 나아가 각자의 레시피가 담긴 이야기다. 인상 깊었던 점은 스승이 없어서 만화책으로 요리를 배우거나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자신만의 요리를 독학한 출연자다. 그리고,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다.
그들은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도 없고, 스승도 없다. 화려한 이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중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출연자는 중년의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다. 따뜻한 밥과 육개장, 상추에 싸서 먹는 보쌈, 찍어먹는 매실 소스와 김치가 전부다. 특별할 것이 없는 아이들의 급식을 내놓았다. 심사위원은 음식을 먹고, 이민 가기 전 초등학교 마지막 급식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숟가락에 스치는 철판의 감촉, 기억의 풍경을 소환한 음식을 먹고 오랫동안 음미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글쓰기와 이 상황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이 사람들에게 기억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했다. 마치 급식 조리사의 음식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은 화려한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요리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정성과 진정성이다.
사람들이 요리 대결 프로그램을 보며 그저 승패에만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흑수저 출신의 요리사들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승부를 건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놓는 음식에는 단순히 기술이나 화려함이 담긴 것이 아니라, 삶의 고뇌와 희망, 그리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레시피로 살아가며, 그 안에는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와 노력, 그리고 희망이 깃들어 있다.
내가 쓰는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르면서 마치 재료를 손질하는 요리사처럼 써 내려간다. 매끈한 어법도, 거창한 표현도 없다. 그저 익숙한 재료들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것처럼, 단순하지만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열렬히.
글 레시피
먼저, 흙냄새 나는 자국을 한 움큼 집어넣는다
길섶에서 묻은 풀잎의 상처와
잎맥에 맺힌 물방울을 더한다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간 바람 한 자락,
할머니의 뒷모습도 놓쳐선 안 된다
글을 쓸 땐 대충 써서야 되나,
삶이 담기고, 들숨과 날숨이 섞여야지.
비틀린 나무뿌리처럼,
삶도 꼬여야 맛이 나고
낯선 길목에서 마주친 웃음도 숨겨둬야 한다
땅에 엎어져 잔 생강나무 잎 하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한 줌,
꼭 필요한 건
누군가의 땀이 서린 사연을 섞어야지
마지막으로,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글을 내어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로,
이 글이 닿는 곳마다
누군가의 마음이 부드럽게 진동하길 바라며
오늘의 아포리즘
평범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이 드러날 때다.
The moment when mediocrity shines is
when the hidden truth in it is revealed.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의 아포리즘
천 개의 숲은 하나의 도토리에서 시작된다.
The creation of a thousand forests is in one acorn.
내가 만드는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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