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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팍 May 11. 2020

단단해지는 5월, 2편

멈춰선 아버지 부름


"드르릉" 코 고는 소리가 어둠을 울린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본다. 어둠 속에 한 점을 찍었다. 점은 모서리를 타고 내려간다. 창문이 없는 방, 두어 평 남짓할까. 낯선 곳. 수많은 사람들이 낯설게 보내다 갔을 곳. 오늘 저녁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낯선 현실의 모서리가 침울하다.

얼마 만인가. 삼 형제가 나란히 한 방에 누워 같이 잠을 잔 게.

큰형은 내가 눕기 전까지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었다. 화투를 치는 사람과 어지럽게 널려진 컵라면들. 떠들고 욕하는 대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벽을 보고 굽은 자세로 누운 둘째 형. 마지막 위치의 기억이 희미하다. 작은아버지 인지, 이모인지 누군가 옆에 있었다. 날카로운 형의 말소리가 싫어 멀찌감치 거리륻 두다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옷을 입은 체, 이불과 베개도 없이 삼 형제가 한 방에 누워 있다.



어제 아침 출근길이었다. 버스에서 막 내리려던 찰라 테니스 가방 속에서 전화 진동이 왔다. 작은아버지였다. 낮은 목소리. 그렇게 소식을 들었다. 10월 초 연휴동안 집에 전화 한 통 없이 보내고 나온 출근길. 회사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테니스 칠 기분에만 들떠 있었다. 내 꼴이 한심했다. 나는 그렇게 부름을 받고 어제 이곳에 왔다. 내가 도착했을 때, 형들은 그 앞을 서성거렸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계셨다. 의자는 그늘이 반쯤 들어찬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그늘속에 어머니는 초조해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물었다.

"저쪽에 계시지" 어머니가 답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먼저 부르셨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어머니는 아버지 밥을 지어 내게 주셨다. 자전거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밭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밭 끄트머리에 있거나 어딘가 사라져 계셨다. 한참을 찾아야 했다. 밥을 드시라 하면 수돗가에 가서 물을 틀라고 하거나, 비료를 가져오라 하거나, 끈을 잡아라, 여길 붙들어라 하셨다. 아버지가 소리치면 형들은 더 큰소리로 소리치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잘 들리지 않는 말소리를 눈치껏 들어야 했고, 부름의 대답은 늘 내 몫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일이다. 주말 아침이면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잘 있냐"  하신다. 퉁명하게 "네” 한다. “언제 함 안 오냐”, “네 가야죠” 하고 끊는다.

어느 날부턴가 전화는 며느리에게만 하신다.

그 전화도 내가 받으면, "왜 네가 받느냐" 야단치신다. 아버지는 새아기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불편했던 부름이 그날 이후 영영 멈췄다.


오늘 아침 버스 정거장은 그날 아침 생각에 눈물이 고였다. 기다리는 버스는 안오고 어버이날이 온다.

왜 긴 연휴에 나를 부르시지 않았을까. 막내아들이 연휴에 쉰다고, 힘겨움 싸움에도 참으셨던 모양이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삼 형제를 불러 모으셨다.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부름을 받고 곧장 왔다. 삼 형제가 모인 걸 아시는지,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눈을 감고 계셨다. 영정 사진 앞에 삼 형제가 나란히 누워있으니 흡족하신가.

그래도 한 번 불러주시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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