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영 Apr 27. 2024

이놈의 기타가 뭐라고

마흔엔튜닝_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분투기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기타를 잘 치고 싶은데, 잘 안 돼 속상해.” 레슨을 마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첫마디였다. 벌써 몇 번째 내 하소연을 들어주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면 재능이 없는 거 아냐? 선생님께 물어봐. 너랑 안 맞는 악기일지도 몰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이놈의 기타가 뭐라고. 아니 남들 다 하는데 이게 뭐라고 난 못할까….’ 이거 하나도 못 해서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지. 애초에 나이 먹고 뭘 배운다는 게 괜한 짓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스트레스 탓인지 피부 트러블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기타는 내게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괴로움을 주고 있다. 박자를 맞춰야 하는 레슨 때는 물론 집에서 단순히 코드 하나를 연습하다가도 내 맘대로 안 되는 손가락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건 예사다. 


‘으… 짜증나!’를 외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분노에 차서 기타 줄을 아무렇게나 잡고 강한 스트로크로 더 심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설마… 이렇게 짜증을 내다가 내 안의 폭력성이 기타를 부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예체능 재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음악 잘하는 애가 미술도 잘하고 체육도 잘한다. 나는 학창 시절 제일 못하는 과목이 체육이었고, 음악과 미술에도 특별히 소질이 없었다. 애초에 재능도 없는 사람이 그나마 체득이 빠른 어린 시절 다 지나 마흔이 넘어 기타를 배우고 있으니, 배움이 더딘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모 물리학과 교수님과 캠퍼스의 학생을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교수님, 저 친구들 참 좋아 보여요. 저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는 제가 글을 제일 잘 쓰는 줄 알고 국문과에 갔는데 아니더라고요. 그걸 깨닫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어요.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이 참 많더라고요.” “저도 제가 물리에 재능 있는 줄 알고 대학에 왔는데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진짜 많더라고요.” “에이, 교수님은 교수님이 되셨잖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이렇게 말하는 교수님은 사실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도 발표하고 일반 독자가 물리를 어렵지 않게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중서 출간에도 열심인 분이다. 교수님의 ‘어쩌다 보니’라는 말에는 ‘좋아서, 계속, 꾸준히, 열심히’ 같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말은 항상 그 의미를 오롯이 담지 못한다. 


“재능이 없는 거 아니냐”고 묻는 내게 기타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재능은 없어요. 근데 이걸로 뭐 할 거예요? 어디 경연대회 나갈 거예요?” 


맞다. 나 취미로 기타를 시작한 사람이지…! 갑자기 뭔 재능까지 찾고 있어… 


그렇다. 재능이 없어도 괜찮다. 나도 어쩌다 보니 기타를 잘 치게 되었다고 말하는 날을 꿈꾼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매주 토요일 <마이데일리> 연재 중

https://www.mydaily.co.kr/page/view/202305141056200236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