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소 May 02. 2018

[인도] 푸쉬카르 낙타축제가 시작됐다.


낙타축제를 5일 앞둔 그날 아침. 매일 아침   펠라펠랩을 먹고 2차로 먹던 과일주스 가게에서 과일주스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종업원이 말했다.


“오늘 낙타 축제 보러 가세요?”


오늘이 몇일이더라? 스마트폰 꺼내 확인하니 오늘은 11월3일 이었다. 2016년 푸쉬카르 낙타축제는 11월8일부터 14일까지 1주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낙타축제는 11월8일에 시작하는 것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공식적으로는 11월 8일에 시작하지만, 낙타축제는 이미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요. 낙타 시장은 이미 열렸거든요. 낙타 알죠? 낙타? 낙타를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어요. 멜라그라운드(mela ground)에 가면 낙타가 엄청 많이 있을 거예요.”


아무렴 낙타축제를 보러왔는데, 낙타를 모를까...


“한국에 낙타 있어요?”파인애플 주스를 만들다 말고 왠지 우쭐한 표정으로 종업원이 물었다.


“아니요. 동물원에만 있어요. 동물원 알죠? 동물원?”나도 괜히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물원에서는 멀리서 보기만 하잖아요. 여기서는 바로 앞에서 낙타를 볼 수 있어요. 만져볼 수도 있고, 탈 수도 있어요.”왠지 시작하지도 않은 싸움에서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상상속의 싸움에서 진 것 과는 별개로 낙타시장이 열렸다면 가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멜라 그라운드가 어디에요?”파인애플 주스를 건 내 받으면서 물었다.


종업원은 허리를 숙여 카운터 밑에 달린 작은 문으로 기어 나와 내 옆 의자에 앉아 종이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멜라(mela)는 모임 (gathering)이라는 뜻으로 멜라 그라운드는 푸쉬카르 마을 중심인 푸쉬카르호수에서 10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곳에서 푸쉬카르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라자스탄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푸쉬카르의 낙타축제 역시 이곳에서 열린다.


푸쉬카르의 낙타 축제는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의 보름달이 뜨는 날 낙타와 말을 팔기위해 인근마을사람들이 푸쉬카르에 모이면서 열리던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낙타축제는 총 7일간 진행되는데 보름달이 뜨기 7일전에 시작해서 보름달이 뜨는 날 끝이 난다. 이 보름달은 힌두교, 시크교, 자인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카르티크 푸르니마(Kartik Purnima)라고 불리는 이 날은 시바가 악귀를 물리친 날로 푸쉬카르 뿐만 아니라 인도의 여러 장소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내가 가려는 바라나시의 데오디왈리 역시 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이 축복받은 날 낙타를 팔기위한 목적이었던 작은 동네의 작은 시장은 이제 라자스탄 주정부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기간동안 작은 사막마을인 푸쉬카르에는 3만 마리가 넘는 낙타가 모이며 낙타는 낙타주인의 취향대로 다채로운 색깔로 치장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아직 축제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3만 마리의 낙타가 온다는 대목에서 벌써 흥분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멜라그라운드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몇 일 있으면 나의 작은 방은 3배로 가격이 오른다. 어떻게 해도 비싼 가격의 방 밖에 없다면 기왕이면 메인바자르(시장길)옆 호수가 보이는 좋은 방에 며칠 동안 머물고 싶었다. 푸쉬카르에 머문 짧은 기간 동안 푸쉬카르는 인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가 되어버렸고, 푸쉬카르에서 지출되는 돈이 (아주 가끔이지만)아깝지 않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한 시간 쯤 메인바자르의 호수와 접한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다녔는데, 내가 생각한 가격의 방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간사하게도 금 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기왕 돈을 쓰기로 작정한거 일단 방이나 한번 구경해 볼 생각으로 대충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내가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빗자루를 들고있던 한 고
소년이 나를 주인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냥 방 구경만 하려고요. 돈이 없어서 이런 좋고 비싼 곳에는 머물지 못해요.”괜히 눈을 피하면서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 없어요. 우리집에 당신에게 딱 맞는 방이 있거든요.”주인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800루피에 축제가 시작하는 당일과 그 다음날 까지만 머물 수 있는 방이 있었다. 이방의 구조는 매우 신기했는데, 방에 짚으로 된 침대가 있고 침대 발치에는 1㎡정도의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작은 변기가 있었다. 방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무엇이 신기한 일인가 하면, 이 화장실은 문이 없는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하얀색의 울퉁불퉁한 벽을 따라가다 보면 툭 들어간 작은 공간이 있고 그곳에 침대를 정면으로 향한 변기가 있다. 이 신박한 구조를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침대는 더블베드, 2인용 방이라는 것은 이방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방 창문에서 보이는 것 이라고는 옆집의 푸른빛 나는 하얀 벽이 전부지만, 방을 나가 루프탑 레스토랑에 가면 푸쉬카르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변기가 정면으로 보이고, 밖에서는 푸쉬카르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그리고 바라나시로 데오디왈리를 보러 가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푸쉬카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7일째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푸쉬카르에 머무를 수 없다. 축제 초반을 보고 푸쉬카르를 떠나야 하지만, 2일을 보나, 4일을 보나 7일 째를 보지 않으면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축제 시작 2일 이후로는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고, 만약 방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800루피방은 2500루피가 된다고 했다.) 지금 있는 방은 200루피에 침대하나 달랑 있는 방이지만 며칠 있으면 700루피로 가격이 오를 것이기에 비슷한 가격에 약간이라도 더 좋은 방으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선금 800루피로  7일 동안 방을 예약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나의 인도여행 역사상 가장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제 드디어 멜라 그라운드로 낙타를 보러 간다. 멜라그라운드는 푸쉬카르 서쪽 브라흐마 사원으로 가는 교차로 부근에 있다. 브라흐마사원을 지나 멜라그라운드로 가는길에는  큰 바자르가 일년내내 열려있다. 다양한 낙타가죽 공예제품을 파는 시장들을 구경하면 저절로 지갑이 열린다. 지갑을 잠그기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적당히 가게에 한눈을 팔고 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어떤 아저씨가 ‘헬로우!!’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깜짝 놀라 앞을 쳐다보니 생전처음보는 거대한 생물들이 내 앞을 있었다.


(‘헬로우’의 8번째 쓰임을 알았다.  ‘위험해!! 멈춰!!’)




낙타 수레 무리가 내 바로앞 코가 스칠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낙타는 상상이상으로 컷다. (나중에 자이살메르에 가서 느낀 것 이지만. 푸쉬카르 낙타축제에는 다양한 크기의 낙타들이 있었고, 큰 낙타는 공룡만큼이나 컷다.) 생김새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귀엽지만 험악하게 생긴 것이, 얼굴은 귀여운데 탄력있고 긴 목과 큰키는 마치 ‘반지의 제왕’의 나즈굴이 타고 다니는 까만용의 노란색 버전 같다고 할까? 커다란 낙타무리가 바로 내앞을 지나가자 말그대로 잎이 떡 버러져서,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기만 하다  낙타무리가 지나가고 난 다음  “와우와우” 소리치며 낙타를 가리켰다.  



“저거 낙타 아니라 공룡 아니에요?”나는 "공룡 공룡" 을 연달아 외쳤다. 아저씨는 나이 값 못하는 나를 보시곤  적당한 미소로 "낙타 낙타"라고 받아주었다. 참 감사하고 너그러우신 분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멜라그라운드로 이어지는 길가에 촘촘히  시장이   늘어서 있었다. 옷가게, 신발가게, 야채가게, 과일가게, 이발소, 수선소, 과일가게, 그릇가게 없는 가게가 없었다.



멜라그라운드로 한발 두발 다가갈 수록 저멀리 혹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셀 수 있었던 낙타인데
어느 순간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낙타의 수에 '이런걸 모래반 낙타반 이라고 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멜라그라운드를 따라 이어진 도로에는 낙타 무리들이 먼지를 휘날리며 쉴새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어떤  낙타 상인은 낙타 거래를 마치고 낙타들과 함께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고, 어떤 상인은 낙타를 거래하기 위해 푸쉬카르로 낙타를 몰고 오고 있었다. 지금도 낙타로 땅이 가득 채워졌는데, 대체 축제가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낙타들이 이곳에 모인다는 말이지? 점점 더 기대감이 차오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 푸쉬카르에 갔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